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Oct 13. 2023

12.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꽃놀이일지도 모르잖아

- 꽃놀이 가기

예전에 우리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장기 입원을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병간호를 위해 병실에서 거의 숙박하다시피 하며 엄마와 함께 요양병원 생활을 해야만 했다. 엄마가 입원을 한지 어느덧 반년을 훌쩍 넘어갔고, 계절은 어느새 여름에서 봄이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나는 오랜 병원생활에 지쳐 있었다. 당시 이런 나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던 것은 병원 바로 옆에 있던 내천이 흐르는 산책로를 걷는 것뿐이었다. 그날도 바람을 좀 쐬고 싶어 터덜터덜 병원 밖으로 나와 공원으로 향했다. 그날도 다른 날들과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나는 여전히 피로했고, 몸과 마음은 모두 지쳐있었다. 그저 무표정하게 산책로를 좀비처럼 힘없이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불현듯, 나의 눈에 샛노란 개나리 무리들이 보였다. 우연히 마주친 그 은은한 빛깔의 고운 아이들을 보자 내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번졌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 꽃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말 얼마 만에 보는 자연의 아름다움인 건지, 나는 도저히 개나리 떼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색깔이 마치 갓 태어난 병아리와 같았다. 활짝 핀 개나리들에 작고 소중한 병아리들이 겹쳐 보이면서 개나리들이 마치 금방이라도 삐약삐약 하고 울어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우연히 마주친 아름다운 광경에 갑자기 마음이 들떠서 당장이라도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엄마와 이 아름다움의 현장을 함께 마주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 병원 쪽으로 파워 워킹을 하며 걸어갔다.


'엄마도 좋아하겠지?'


나는 갑작스레 다가온 설렘에 심장까지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헐레벌떡 거친 숨을 내쉬며 병실에 도착했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엄마! 산책로에 개나리 엄청 예쁘게 폈더라. 완전 병아리 같아. 나랑 같이 꽃 보러 갈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엄마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귀찮아."


엄마는 나에게서 등을 돌리며 돌아누워버렸다. 엄마의 시큰둥한 반응에 나의 설렘은 와장창 무너져버렸다. 나는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의기소침해졌다. 그리고 순간 기운이 빠져 병원 간이침대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살이 빠져 부러질 듯 가녀린 엄마의 등을 그저 멀뚱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도 오랜 병마와의 싸움에 지쳐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엄마는 나보다 몇 천배는 더 몸과 마음이 망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엄마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희망이 없어 보였다. 이런 엄마에게 나는 차마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꽃보는 거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잖아."


이 말을 뱉고 나자 우리 둘 사이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엄마는 나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기운이 없어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으니, 내가 개나리를 몇 송이 꺾어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몸을 일으켜 병실 밖을 나가려는데, 순간 엄마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한 번 가보자."


엄마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깜짝 놀라 엄마가 일어나는 것을 도운 후, 곧장 휠체어와 담요를 준비했다. 그리고서 천천히 휠체어를 밀며 산책로 쪽으로 걸어 나갔다. 아까 내가 보았던 개나리들이 다시 시야에 들어왔다. 저 멀리서 보이는데도 그 생기 있어 보이는 노란빛의 무더기들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부디 마음에 들어 하길 바라며 그 아름다움의 향연으로 휠체어를 밀어나갔다. 드디어 엄마와 함께 개나리가 있는 곳에 가까이 도착했다. 그 싱그러움에 의해 내 얼굴에 자애로운 웃음이 자동으로 번졌다. 엄마도 나와 같을까? 궁금한 마음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때?"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쁘네… 고마워, 네 덕분에 꽃놀이도 다하고…"


등 뒤로 햇살이 내리쬐는 것이 느껴졌다. 봄의 따스한 햇살이 마치 백허그라도 해주는 듯, 그 순간만큼은 몸과 마음이 모두 따뜻해졌다. 엄마도 내가 느끼는 따뜻함을 같이 느끼길 바랐다. 그날은 그렇게 엄마와 내가 함께 꽃놀이를 했다. 그리고 그날은 엄마 생의 마지막 꽃놀이가 되었다.


나는 가끔씩 엄마와 함께 했던 꽃놀이를 회상해보곤 한다. 특히 요즘처럼 계절이 바뀌어 새로운 계절이 성큼 다가온 것이 느껴질 때면, 엄마와 개나리의 추억이 더욱 짙어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가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최대한 많이 만끽하고 가야겠구나…'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마치 죽음이라는 것은 나에게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장례식에 다녀와도 죽음은 그저 남의 일일 뿐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끝은 상상하지 못한다. 그러다 마치 교통사고처럼 덜컥 찾아온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이번에 맞이하게 되는 가을이 나의 마지막 가을이 될 수도 있고, 이번에 보게 되는 단풍과 은행, 억새풀이 나의 마지막 꽃놀이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번 가을에 먹게 되는 밤이나 홍시, 곶감과 같은 제철음식들이 나의 마지막 가을 음식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드니 이제까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냈던 계절들이 아까워졌다.



이제부터라도 철 따라 바뀌는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졌다. 이런 생각이 드니 도저히 그냥 집구석에만 콕 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원래의 나라면 그냥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이나 흘려보냈겠지만, 오늘만큼은 밖으로 나가 가을을 만끽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벌써 10월이지만 아직 완연한 가을은 아닌 건지 빨간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은 볼 수 없었다. 대신 아직도 푸릇푸릇한 초록색 은행잎이 은행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노란색 은행잎의 이미지가 내 뇌리 속에 너무 깊게 박혀서인지 초록색 은행잎은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도 오늘은 초록색 은행잎놀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집 주변 공원을 거닐며 노랗게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초록색 은행잎을 본 것에 행운을 느끼며 가을의 선선한 공기를 느껴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