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웬만하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려고 하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길어진다 싶으면 다음 한 두 정거장까지는 걸어가 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침대에만 누워있던 예전보다는 다리힘이 좀 생긴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아직까지 체력은 저질인지라 외출을 했다가 집에만 돌아오면 급 피로가 몰려와 침대에 바로 뻗어버린다. 역시 침대에 누워있는 게 최고로 좋지만, 나도 이제 이 지긋지긋한 만성피로와 무기력증에서 벗어나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퇴근 후 자기 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고, 심지어 운동 후에도 체력이 남아돌아 취미활동까지도 할 수 있는 그 강인한 체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러고 보니, 우리 엄마는 예전에 직장을 다니며 퇴근길에 장을 봐오고, 또다시 집안일을 하고, 운동에 취미활동까지 하곤 했었는데… 도대체 이걸 다 어떻게 한 걸까? 지금의 나라면 퇴근하고 그래, 장까지는 어찌어찌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집에 오면 장 봐 온 것들을 정리도 못한 채 침대로 바로 직행해 곯아떨어져 버릴 것이다. 나의 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본격적이고 주기적으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하지만 일단 기운이 없으니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운동영상을 찾아보기로 했다.
예전에 한창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스위트홈>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을 당시, 나는 넷플릭스 자동 재생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워 단 하루 만에 그 드라마를 끝까지 다 봐버린 적이 있었다. 너무 재밌어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드라마를 너무 빨리 봐버린 아쉬움에 유튜브까지 기웃거리며 관련 영상들까지 모조리 탐닉해 버리곤 했는데, 그러다 <스위트홈>에서 소방관 역으로 나온 배우 이시영의 운동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오 마이 갓!'
같은 여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근육이 너무나 멋있었다. 드라마 내에서 괴물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에 나온 등근육도 최고였지만, 드라마 촬영 전에 팔 굽혀 펴기를 하며 몸을 펌핑하는 이시영의 모습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이시영이 운동을 하는 모습을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계속 찾아보게 되었다. 이시영의 탄탄하고 근육 잡힌 팔은 예전에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 브래드 쇼의 팔근육을 보고 감탄하던 과거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 당시에는 캐리 브래드 쇼가 멋있다는 생각만 하며, 나도 저 근육을 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상상은 하지 조차 못했다. 그런데 왜인지 지금은 이들의 단단한 근육과 그것을 만들기까지 그들이 해왔을 노력이 나를 자극한다.
'나는 왜 매번 누군가를 보며 감탄만 하는 수동적인 사람이어야 하나? 그 감탄할만한 요소를 내 것으로 만들 순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호기롭게 이불을 뻥하니 걷어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바닥으로 내려가 팔 굽혀 펴기 기본자세를 취해보았다. 그리고 팔을 굽혀 몸을 내려보는데
'엌…'
팔이 사시나무 떨리듯 바들바들거렸다. 내 몸을 견디기엔 팔이 너무도 연약했다. 그리고 아무리 팔에 힘을 줘봐도 도저히 바닥 끝까지 내려가 지지가 않았다. 아쉽지만 내려가는 건 이쯤 하고, 이제 굽혔던 팔을 펴 몸을 올려보려는데 팔이 또 미친 듯 덜덜거렸다. 결국 팔은 나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고, 나는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팔 굽혀 펴기를 불과 단 한 개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약간 침울해진 나는 어쩔 수 없이 치트키 자세로 불리는 무릎 꿇고 팔 굽혀 펴기로 방향을 틀었다. 나 같은 초보가 처음부터 정자세로 시작하는 건 무리이고 욕심이었나 보다. 팔을 굽혀 몸을 내려보았다. 여전히 힘들긴 했지만 아까보다는 몸이 좀 더 바닥 가까이 내려갔다. 심지어 나는 이 자세에서는 영차하고 무사히 팔을 펴서 몸을 위로 들어 올릴 수도 있었다. 무릎을 꿇은 상태로 몇 번 더 팔 굽혀 펴기를 해보았다. 팔이 아프긴 했지만 할 만은 했다.
'이렇게 무릎을 대고서라도 팔 굽혀 펴기를 몇 번은 할 수 있으니 이걸로 된 건가?'
하지만 뭔가 찜찜했다. 나는 제대로 된 정석의 팔 굽혀 펴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내 두 팔로 막힘없이 헛둘헛둘 올라갔다 내려가는 걸 해보고 싶었단 말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내 팔 힘이 너무 약했다. 일단 요령을 좀 배워보고자 유튜브에서 팔 굽혀펴기 영상을 뒤져보았다. 내가 봤던 영상들 중 30일 동안 꾸준히 팔 굽혀 펴기를 한 모습을 모아 영상을 올린 것이 있었다. 이 유튜버는 원래 나처럼 팔 굽혀 펴기를 잘하지 못했다. 영상 초반부를 보니, 이건 누가 나의 모습을 찍어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남의 일이 아니었다. 팔 굽혀 펴기를 하며 몸이 덜덜거리는 남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자니 짠한 마음까지도 들었다. 하지만 영상 후반부로 갈수록 그 사람은 꽤나 정석의 자세로 팔 굽혀 펴기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굽었던 어깨가 펴지고 약간의 팔 근육이 붙었다. 그리고 덤으로 복근까지도 생겼다!
나는 이 운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팔의 힘을 기르는 것과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을 온전히 나 혼자만 하기에는 왠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내가 참고할 만한 운동 영상이 있는지 유튜브를 더 뒤져보기로 했다. 유튜브에는 온갖 운동 영상들이 즐비했다. 이 정도면 홈트레이닝으로도 체력향상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선택지가 너무나 방대했기 때문에 어떤 유튜버의 어떤 영상을 보고 운동을 시작해야 할지 결정장애가 왔다. 이러다가는 운동이고 뭐고 영상만 보다 하루가 다 갈 것 같아서 그냥 마음에 꽂히는 유튜버의 영상을 냅다 선택한 후 즐겨찾기를 해두었다. 내가 픽한 유튜버는 4주 동안 할 수 있는 운동계획을 상체(팔, 등), 복근, 하체 이렇게 3분 할로 나누어 영상을 올려두었다. 계획적인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든 바로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운동으로 탄탄한 팔 뿐만 아니라 11자 복근에 애플힙까지 내 몸에 장착해 보기로 했다.
좋아, 나에게 필요한 영상도 다 찾았겠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런데 한 가지 뛰어넘어야 할 가장 큰 장벽이 남았다. 그것은 바로 완벽한 계획과 준비를 한 것만으로도 크나큰 만족감이 몰려와 마치 내가 이미 간접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뿌듯함에 취해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해야지! 하고 생각해 버리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 미루다 결국엔 나의 고질적인 귀찮음에 의해 흐지부지 되어버린 계획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아, 왜 나는 침대에만 누우면 몸이 이렇게 무거워지는 걸까? 그래도 아까 팔 굽혀 펴기를 몇 개라도 하긴 했으니 오늘의 운동은 이걸로 괜찮지 않을까?
나는 저질체력도 문제지만 정신력도 약해빠졌다. 그래서 요즘 이런 귀차니즘을 이겨내기 위해 나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외치는 문구가 있다.
'NOW OR NEVER! 지금이 아니면 절대 못하는 거야!'
그래 일어나자, 일어나.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지금 당장!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일단 나는 팔근육에 꽂혀서 운동을 하자고 마음먹게 되었으니 팔과 등운동 위주의 상체운동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운동을 할 때 덤벨이 필요하길래 집구석탱이에 처박아두었던 2kg짜리 핑크색 아령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운동 영상을 재생했다. 사실 내 인생에서 팔운동을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해본 적이 있었던가? 초등학생 때인가, 중학생 때인가? 체육 수행평가를 위해 철봉 매달리기를 반강제적으로 수행해야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없는 것 같다. 다리는 걸을 때라도 사용하니 그래도 내 몸 중에서 그나마 튼튼한 편인 것 같긴 하다만, 팔은 그렇게까지 힘을 쓸 일이 없어서 연약 그 자체다. 지금 2kg짜리 아령을 들고 팔운동을 하고 있는데 팔이 이렇게까지 벌벌벌 떨리는 모습이 그 반증이다. 저질체력인 나에게는 이 운동 자체가 너무 버거웠다. 불과 11분짜리 운동영상인데도 제발 영상이 빨리 끝나주길 바랐다. 2kg이 이렇게까지 무거운 무게였다니. 11분이 이렇게 느리게 흘러가다니! 아인슈타인, 그쪽 말이 맞아. 스마트폰 할 때는 1시간도 깜짝 놀랄 정도로 순삭이었는데, 지금 이 11분은 지옥과도 같아. 그리고 운동을 하면서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일 내 팔에 근육통이 장난 아니겠구나…'
그동안 운동을 등한시하고 소홀히 했던 나에게 주어지는 이 고통을 형벌처럼 묵묵히 인내해야만 했다. 운동 영상이 끝나고, 팔이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었다. 나는 과연 이 4주 운동 프로그램을 작심삼일 없이 끝까지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4주 후에는 과연 나도 팔 굽혀 펴기를 잘할 수 있게 될까?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는 말은 수도 없이 많이 들어보았다. 이제는 진정으로 나도 저질체력과 유리멘털을 과거의 뒤안길로 보내버리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거듭날 테다.
각 잡고 상체운동을 한 다음 날, 역시 그분이 오셨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리를 묶으려고 팔을 위로 들 때마다 통증에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안 하던 운동을 해버리니 약하디 약한 내 팔이 놀랐나 보다. 이게 다 강인 해지는 과정이려니 해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