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안의 씨앗은 이런 말도 한다. “너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씨앗은 봄이 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지난해의 삶이 어떠했듯 새봄에는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살아만 있다면 말이다. 그처럼 우리도 살아만 있다면 새봄에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아니, 우리는 봄을 기다릴 것도 없다. 오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20년 넘게 숲속에서 살아온 농부 작가 최성현의 『무정설법, 자연이 쓴 경전을 읽다』 중에서.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4.4.11(목) 28면.
왜 이리 답답할까. 누구 말대로 봄소식에 심장이 나대야 하는데.... 올해의 봄은 왜 이리 회색빛일까.
매화도 피고 산수유도 피고 동백도 피어오르는데....
봄이 좋은 것은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농부는 씨앗을 뿌리면서 가을의 수확을 희망한다. 학생은 학교에 가면서 괜찮은 미래를 희망한다.
나는 이 봄에 무엇을 희망하는가. 우리는 이 봄에 무엇을 희망하는가. 우리는 왜 이렇게 멀어져 버렸을까. 우리는 왜 이렇게 암담해져 버렸을까.
그래도 한 가족인데, 그래도 한 민족인데, 그래도 한 국민인데, 어째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사나워져 버렸을까.
오늘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지금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우리나라를 위해 피 흘린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래서는 안 되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민주를 위해 일생을 바치고, 잘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래서는 안 되지. 이런 나라, 이런 사회를 원하지는 않았을 거니까.
지금 당장 다시 시작하자. 모든 감정 내려놓고 모든 욕심 내려놓고 모든 꼼수 내려놓고 정정당당하게 부끄럽지 않게 후회하지 않게 다시 시작하는 우리나라를 보고 싶다. 지금까지가 어떠했든 새봄에 새로 시작하는 우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