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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살면서 우리는 흔히 ‘투사’나 ‘합리화’ 같은 방어기제를 많이 사용한다. 극복할 수 없는 문제에 짓눌리다 보면 세상 탓, 상사 탓, 부모나 조상 탓을 하게 된다. 또 내가 이 정도 해내는 게 어디냐며 자신을 다독이고 합리화한다. 그러면 임시방편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고 넘어갈 수는 있지만, 궁극적인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한다.

반건호 『삶의 태도』 중. 정신과 전문의 반건호 교수가 40년 동안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며 얻은 성찰을 담았다.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5.1.27(월) 24면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책임을 모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전가'이다. 남 탓, 상황 탓, 환경 탓.... 하다못해 운명 탓까지, 나 외의 모든 것으로 책임을 돌린다.


책임을 자기 외의 것으로 돌려서 일이 해결되고 바로잡아지면 '탓'도 방법이 된다.


그런데 '탓'으로 해결되는 일이 있을까. 잘못된 일이라면 원인 규명은 반드시 되어야 하고 개선과 보완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탓'은 안된다. '탓'은 원인규명이나 해결책이 아니라 감정이고 비난이기 때문이다.


나는 잘했는가. 우리는 잘했는가.

잘못은 언제나 너였는가. 너희였는가.


이렇게 될 때까지 내 탓은 없었는가.

여기 오기까지 남의 덕은 없었는가.


사람이 하는 일에 완전함이 있을까. 언제나 미숙하고 부족하고 미완성의 삶을 메꾸고 보완하고 기우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내 덕만 보이고 남의 탓만 보이는 눈이 슬프다.

내 탓이 보이고 남의 덕도 보는 사람 속에 살고 싶다.


네 탓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손가락질하는 나라가 아니라, 당신 덕으로 이만큼 되었다고 손뼉 치는 나라를 기대한다. 그런 나라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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