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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삶

by 선희 마리아
인도군의 계엄령이 임시 해제된 첫날, 카슈미르는 아직 웅크려 떨고 있는데 총칼의 번득임처럼 시리기만 한 만년설 바람 속에 사과나무를 보살피는 한 남자를 만났다. 30년 동안 그는 빈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왔고 그중에 천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았다고 한다. (···)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박노해 사진에세이집 『다른 길』 중.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4.12.12(목) 32면.

전쟁, 유행병, 폭력과 같은 난리 속에서 흔들림 없는 평상심과 항상심을 유지하는 일은 유명하거나 대단한 사람은 하기 어렵다. 세상이 그들을 놔주지 않고 그들도 세상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흔들거나 변화시킬 힘이 없는 범인들이야 주어진 밭 한 뙈기, 나무 한 그루라도 가꾸어 수확을 기다려야 하므로 세상이 어떻든 가꿀 수밖에 없다.


세상을 향한 의견을 말할 자리도 주어지지 않고, 나도 할 말이 없어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일상을 지속해 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역사는 흘러가고 생명은 이어진다.



살아보니 모든 소란은 내 이익을 좇는 데서 시작되고 모든 답은 내 이익을 버리면 보였다. 쉽고도 단순한 이 답을 외면하고 다른 답을 찾는 데서 세상은 시끄러워진다. 내 이익을 버리지 않으면 답은 없다. 모두들 알고 있고 보고 있는 것을 나만 모르고 안 보이기 때문이다.


나를 빼야 내가 산다. 가장 어려운 나의 욕심과의 싸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밀리지 말아야 한다. 지지 말아야 한다.


"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 해도 오늘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과나무 철학으로 유명한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가 따먹지 못할 사과도 심으면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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