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취미로 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기획해서 책과 씨름하는 게 독서입니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을 읽느니 나가 노는 게 낫습니다.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빡세게 읽어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또 백세 시대에 그 많은 일들을 하면서, 엄청난 경험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한 가지만 알아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산문집 『최재천의 희망 수업』 중에서.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5.2.10(월) 28면.
어렸을 때는 가정환경 조사서라는 게 있었다. 생활환경, 취미, 특기, 교우관계 등을 적었다고 생각하는데, 취미란에 늘 독서라고 적었던 기억이 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뭔가 그럴듯해 보일 것 같은 치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다. 문학소녀연하기도 했고, 문학소녀라고 불러주면 내심 으쓱하기도 했다.
독서를 취미로 하다가 전공을 문학으로 하면서 오히려 책하고 멀어졌던 기억도 있다. 글을 쓰고 싶어서 들어갔던 국어국문학과는 내가 가지고 있던 문학에의 꿈을 완전히 버리게 했다. 작품의 분석과 배경 연구, 인물 연구 등등으로 문학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작품은 갈가리 찢겨나갔다. 마치 꽃의 향기의 출처를 찾는다고 꽃잎을 모두 떼어내는 것처럼 작품을 분석한다고 작품 전체를 훼손시켰다.
문학에의 열망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만 작가가 아닌 국어선생님이 되었다. 책을 항상 가까이해야 하고 가까이하는 사람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취미로 읽는 책과 의무로 읽어야 하는 책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생업으로 읽는 책 외에 갈증이 나면 가벼운 독서를 하여 지적 허기짐을 달래곤 하였다.
그렇게 나의 독서는 자기 계몽서나 에세이 등으로 이어졌다. 마치 독서를 한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읽는 것처럼 깊이가 없었다. 나의 독서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책에선가 독서는 힘에 겨운 책을 선택하라는 조언을 읽었다. 다른 때와 달리 무척 강하게 다가왔다. 본격적인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독서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새삼 공감을 한다. 독서는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 정면승부를 걸어야 하는 일이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을 읽느니 차라리 나가서 노는 게 낫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찔린다. 그동안 독서하는 척했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라도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편식할 것이 아니라 모르는 분야의 책도 빡세게 읽어 지적 편식과 편중을 바로잡아야 한다. 아까운 시간을 독서다운 독서에 투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