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늘 단순한 데 있다. 가을날 창호지를 바르면서 아무 방해받지 않고 창에 오후의 햇살이 비쳐들 때 얼마나 아늑하고 좋은가. 이것이 행복의 조건이다. 그 행복의 조건을 도배사에게 맡겨 버리면 자기에게 주어진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한다.
법정(1932~2010) 스님의 1998년 산문집 『산에는 꽃이 피네』에서.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5.2.12(수) 28면.
나이가 들어 좋은 점들이 있다. 젊음의 장점과 노년의 장점을 비교한다면 물론 젊음의 장점이 단연코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이는 원해서 드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드는 것이니까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다.
나이 들면 모든 것이 안 좋은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젊음의 장점과 비교하면 뒤지지 않을 만큼 찾을 수 있다.
노년의 장점 중 하나는 단순해진다는 것이다, 사회적 역할이 끝나 행동반경이 단순해진다. 생각도 단순해진다. 시간도 단순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단순해지면 사물을 보거나 판단을 할 때 애매하지 않다. 명쾌해진다, 단순해지니까 주어진 것이나 맡겨진 일들을 고맙고 귀하게 생각한다.
노년에는 행복도 달라진다. 젊었을 때는 행복의 기준을 외부에 둘 때가 많았다. 남이 보는 것, 남이 생각하는 것, 사회적 기준, 사회적 시선이 행복의 기준이 되었다. 저 정도는 갖추어야 행복인 것 같았고, 남만큼은 되어야 행복할 것 같았다. 남들의 삶에 관심이 갔고 부러워했다. 외부적 기준으로 보는 나는 언제나 불만스러웠다. 외부적 행복의 기준에 따라 늘 흔들렸다.
나이가 드니 남과 나의 차이도 인정하게 되고 포기할 줄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나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있는 것에 만족하게 되었고, 아직까지 누릴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하게 되었고, 감사하니까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행복은 누구를 시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만큼 되어서 얻는 것도 아니다. 가르치거나 배워서 얻는 것도 아니다.
미뤘던 청소를 하고 밀린 빨래를 하고 났을 때, 나른한 피곤 속에 느껴지는 개운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났을 때의 뿌듯함, 마냥 편하고 게으르고 싶은 나를 넘어서, 수고와 인내로, 괜찮은 내가 되어가는 것을 느낄 때 행복함을 느낀다.
누구에게 맡겨서 하는 일, 누군가가 해주는 일에는 행복이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때, 나에게 주어진 일을 했을 때, 내 몫의 일을 감당할 때 행복을 느낀다. 올바르고 선하고 마땅한 것을 했을 때 행복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하는 것이 행복을 찾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