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포기하고 미래에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은 없는 법이다. 현재에 행복할 수 있는 한 인간은 언제든 행복할 수 있고, 미래에만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은 미래에도 행복해질 수 없다.
김민섭 에세이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중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5.1.20(월) 28면.
모두들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행복하기 위해 살고, 행복하기 위해 일한다. 행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행복을 찾고 행복을 좇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의 행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남이 누리는 행복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행복은 어느새 균일화되고 규격화되어 버렸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 것. 고생하지 않고 편안하고 안전하고 즐거운 것. 이 정도가 행복의 보편적인 정의가 되어버린 것 같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추구하는 것일까. 소유하는 것일까. 잡을 수 있는 것일까.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끝없이 쫓아가야 하는 것일까.
행복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결과물에 따른 감정이 아니라 목표에 대한 반응이다. 행복을 재는 객관적 잣대는 없다. 행복을 측정하는 절대적 도구가 있다면 행복도 계량화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을 느끼는 때나 느끼는 경우는, 사람마다 때마다 일마다 다르다. 같은 사람도 소유에서 행복을 느낄 때가 있고 나눔에서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땀을 흘리면서 행복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땀을 닦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소소한 행복도 있고 벅찬 행복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가치 있는 일을 했을 때의 느낌이다. 가치 있는 일은 나보다 다른 사람을 위하거나 보다 고상한 것을 위해 나를 양보하고 절제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행복은 대의를 위해 소탐을 버릴 때 느끼는 기쁨이다. 내 것을 포기할 때 느끼는 기쁨이다. 이 어렵고 하기 싫고 외면하고 싶은 일을 오랜 갈등 끝에 선택하여 행동할 때 은근하게 맛보는 만족감이다.
바쁜 출근길에 멀리서 뛰어오는 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기다릴 때, 길거리를 쓸고 있는 미화원 분에게 고맙다고 인사할 때, 횡단보도에서 걸음이 느린 할머니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걸어갈 때, 내가 보다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느낄 때,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이 느끼는 행복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지금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미래를 위해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행복을 주워가다 보면 미래의 행복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