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 일은 자신의 인생을 축복하는 일이어야 한다. 나는 44년간 이 몸으로 살아왔다. 물론 신체적으로 쇠약해지는 건 느낀다. 그리고 나는 삼중음성유방암을 앓고 있다. 하지만 나는 기쁨을 잃지 않을 것이다.
니시 가나코의 『거미를 찾다』 중. 나오키상을 받은 저자의 첫 에세이집으로 캐나다에서 유방암을 발견하고 치료하기까지 약 8개월의 시간을 담았다.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4. 7. 29(월) 28면.
사람의 일생도 농사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인생의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김을 매고 물을 대어 자라게 하고, 가을에 추수하고, 겨울에 갈무리하는 과정이 인생의 과정과 같은 것이다.
40대를 기점으로,
40대 이전에는 나이를 먹는 일이 기대를 먹는 일이었다. 앞으로 나가야 했고, 지금보다 나을 미래를 기대하였다. 다가 올 미래를 향해서 빨리 달려가고 싶었다. 희망 때문에 살아가던 때였다.
50대는 인생의 방학 같았다.
숨 가쁘게 오른 등산길에서 목적지에 도달하여 한숨 쉬면서 숨을 고르고 물을 마시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지금만 같았으면 하는 때가 많았다.
60대 이후에는 나이를 먹는 일은 시간을 먹는 일이었다. 더 이상의 기대는 없었다. 매듭짓지 못한 일들을 정리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때였다. 기대가 없으니까 혼란과 불만도 줄어들었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체념이나 달관 비슷한 것이 생겨나고 비교의 잣대를 놓아버리게 되었다.
70대에 들어서면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획이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것과 같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긴 노년을 살아가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좋은 일 없을 긴 노년을, 뒤를 돌아보며 보낼지, 앞을 바라보며 보낼지를 선택해야 한다.
노년의 앞날이 장밋빛이거나 여름은 아닐지라도, 주어진 시간을 지겨워하거나 끌려가며 살고 싶지 않다. 끝까지 자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겨진 생을 매 순간 감탄하며,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고 싶다.
나이를 먹는 일이 자신의 인생을 축복하고 기뻐하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