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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살면서 단 한 번도 나를 직접 본 적이 없는 나는 죽어서 나를 볼 수 있을까. 내가 보는 나는 언제나 거울 속의 나였다. 혹은 유리 속의 나, 좌우가 뒤바뀐 나. 그것은 나지만 내가 아니기도 했다. 비친 나에 불과했다. 그것 아닌 나를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었다. 나를 보고 싶다. 남처럼 보고 싶다.

최진영 소설 『윈도』 중에서. 독자들의 복간 요청이 많았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2013)가 제목을 바꾸고 새롭게 나왔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한 남자의 얘기다.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4. 3.28


정말이다. 나는 나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진짜 본 적이 있는가. 제대로 본 적이 있는가.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진짜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실제의 내가 마치 어떤 곳으로 소풍 나와 있는 느낌. 아니면 실제의 집을 떠나 방황하는 불인감. 깨어나면 진짜 현실이 있을 듯한 막연함. 떠돌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회귀본능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지금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실제의 나일까. 무대 위에 세워진 나를 실제의 내가 어느 곳에선가 보고 있는 느낌. 관찰당하는 기분. 그럼 지금 이곳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나인가, 무엇인가.

깊이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지고 이상해지는 듯하여 머리를 흔들면서 빠져나온다. 이렇게 찾아야 할 답을 미루면서 피하면서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가고 인생은 끝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답이 나올까. 정신이 이상해질까.


위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닌 듯하여 안도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계속 해답 없는 답을 쫓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실체는 무엇일까. 지금 사는 것이 꿈인가 현실인가. 이렇게 살다 가는 것이 맞게 사는 것인가. 제대로 사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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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