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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by 선희 마리아 Feb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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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읽었다. 매번 고백하지만, 내 독서의 수준은 참으로 얄팍하였다. 어느 글에선가 ‘읽어도 안 읽어도 될 책은 읽지 말고 차라리 나가서 놀아라’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뜨끔하였다. 그동안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긴다고 하였지만 본격적인 책 읽기는 하지 못하였다는 반성때문이었다.

파울로 코엘료. 얼마나 유명한 작가인가. 1980년대 후반 『연금술사』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아닌가. 그 후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소설을 써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작품을 써낸 작가가 아니었는가. 그런데 나는 코엘료의 작품을 처음 읽었다.  도서관에서 서가를 뒤지다가 우연히  만난 책이었다.       

1986년 여름, 코엘료는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를 출발하여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정에 오른다. 코엘료는 1986년 순례를 시작할 때는 작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순례에 대한 글을 쓰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음 해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떠올랐던 영감들을 떠올려 1987년 『순례자』로 소설가로 데뷔하였다. 계속하여 1988년 『연금술사』를 발표하고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등을 발표하였다.        


『순례자』는 코엘료의 자전적 소설이다. 1970년대에 코엘료는 1492년에 창설된 람RAM이라는 기독교 평신도회 영성단체에서 비밀하고 신비스런 능력을 터득하기를 기대하면서 수련하였다. 1986년 코엘료는 람의 마스터가 되는 승격식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알려진 오래된 중세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자신의 검을 찾으라는 지시를 받고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선다.         

  

책의 제목인 『순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자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무슬림 전통에 의하면, 모든 신자는 적어도 생애에 한 번은 메카로 순례를 떠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탄생 이후 첫 천 년 동안 세 개의 신성한 순례길이 존재했다. 누구든 그곳 중 하나를 따라 걷는 사람에게는 많은 축복과 관용이 베풀어졌다. 첫 번째 길은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의 무덤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상징은 십자가이고,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로마의 방랑자’라고 불렸다. 두번째 길은 예루살렘의 예수의 성묘聖墓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수상가手相家’라고 불렸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그를 맞아준 이들이 흔들었다는 종려나무 가지가 그 길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길은 이베리아 반도에 묻힌 사도 야고보의 성 유골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곳은 어느 날 밤 양치기가 들판 위에서 빛나는 별을 봤다는 장소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후 성 야고보와 성모마리아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복음서의 말씀을 가지고 그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그곳에는 콤포스텔라(별들의 들판)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오래지 않아 모든 기독교도 국가의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도시가 세워지게 되었다. 이 신성한 세번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에게는 ‘순례자’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그들은 가리비껍데기를 상징으로 선택했다. 23쪽.  

고향인 브라질을 떠난 코엘료는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페트루스라는 안내자와 함께 걷게 된다. 안내자인 페트루스는 순례길 중에 깨달아야 할 앎이 특별하고 어렵게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하여 주지시킨다.     

 “지혜로 향하는 진정한 길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합니다. 첫째, 그 길은 아가페를 포함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에 관해서는 좀 더 나중에 말하도록 하죠. 그다음으로는, 살아가면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이죠. 써보지 못한 검이 녹슬어버리고 마는 것과도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길이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말이죠.” 41쪽.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엄청나게 찔림을 느꼈다. 평생을 공부하였고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였다. 그런데 내가 찾고 가르쳤던 진리가 과연 아가페, 즉 절대적 사랑에서 비롯되었는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는가. 누구라도 갈 수 있게 쉬운 길을 제시하였는가를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진리를 순수한 목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나의 공부는 사회적 자리를 얻기 위함이 목적이었음이 솔직한 고백이다.  다음 내가 공부한 것이나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지식들이 실제로 활용 가능한 지혜였는가, 박제된 지식이었는가를 생각해 보니, 산만하고 난해한 지식을 전달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사회에 나가서 써먹을 수 있는 실제적인 지혜를 가르쳐는데 소화되지 못하고 검증되지 못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쉽게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었나 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진리는  단순 명쾌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가르쳤다. 오랜 시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얻은 나름의 결론이었다. “진리는 단순 명료하다. 본질은 언제나 심플하다. 진리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 현학적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에 이르지 못하게 하고 진리를 찾아 헤매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학자들이나 교수자들이 진리를 복잡하고 어렵게 가르치는 것은 일까. 가르치는 사람이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헤매는 탓이라고 생각했고, 자기의 현란한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어렵고도 애매한 설명으로 진리에서 더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과 명쾌. 평범과 일상이야말로 최고의 지혜요 지식인 것을 모르고 평생을 헤매 다니는 것이 우리들 아닌가. 이런 인간의 허상을 꿰뚫는 코엘료의 통찰과 예리함에 놀랐다.      


순례길의 안내자 페트루스는 순례길 중에 검으로 상징되는 지혜를 얻기 위한 람의 의례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안락하고 익숙한 현실을 떠나 고귀한 ‘저 높은 곳의 삶’을 추구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오늘 나는 작은 씨앗이 되었다. 나는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내가 빠져 있던 깊은 잠과 대지가 안락함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저 높은 곳의 삶’이 훨씬 더 아름다운 것임을 발견했다. 난 내가 원하는 만큼 새롭게 또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내 팔이 충분히 자라나, 내가 태어난 대지를 넉넉하게 감싸안을 수 있을 때까지. 48쪽.     

주인공은 산티아고 순례길 첫날밤에 ‘저 높은 곳의 삶’을 추구하는 존재로  새로 태어나는 경험을 다.


페트루스는 주인공에게 삶의 목표와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의 선택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삶의 목표를 가질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와 그 길을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나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람의 두번째 의례가 매우 중요한 건 그래서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습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들 속에서, 너무 익숙한 것이라 무관심해진 우리가 알아보지 못했던 신비를 발견하는 훈련이죠. 57쪽.       

일상에 너무 익숙하여 무관심하게 되고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이 신비라는 것을 잊고 사는 우리들에게 일상의 신비를 발견하는 것이 삶의 목표에 도달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우치고자  것이다.

“ 페트루스, 호르디 신부님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마치 곧 일어날 일인 양 말하더군요.”
“그리스도의 재림은 늘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요. 그게 당신 검의 비밀입니다.” 68쪽.

페트루스는 순례길 내내 주인공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소박함’의 길이며, 누구라도 걸을 수 있는 길이고, 이런 길만이 신에게 이르는 길‘(73쪽)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신은 복수가 아닌 사랑”(75쪽)이며, 인간들이 벌이는 전투에서 어느 편이 옳고 누가 진실을 쥐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 중요한 것은 양편 모두 ‘선한 싸움’을 했느냐 하는 것‘(78쪽)이라고 이야기한다.


페트루스는 갓 결혼하는 신랑신부를 보면서 인간의 사랑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들은 사랑은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곧 상대방 외에는 아무도 없게 되어 저희끼리 가정을 꾸리고 모험을 함께 겪어나가게 되며 삶을 위해 투쟁하게 되겠죠. 그로 인해 사랑은 커져 가고, 가치를 지니게 되고요. 남편은 군에 입대하여 이력을 쌓아나가고, 아내는 어릴 적부터 배운 요리법을 익히며 훌륭한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나가겠지요. 서로의 동반자로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함께 무언가를 이루어간다고 느끼는 건, 그들이 ’ 선한 싸움‘을 함께 이끌어나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딘가에 숨어 있을 함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제나 행복할 수 있을 겁니다. “ 143쪽.       

주인공은 페트루스와 함께 순례길을 걸으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기적과 신비를 찾는 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간다.

숙소까지 가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내 안내자를 인도하고 있음을. 여행하는 동안 그 어떤 순간에도 페트루스는 나보다 더 현명하거나 성스럽거나 더 나아 보이려 한 적이 없음을. 그는 내게 람의 의례를 행하며 자신이 한 경험을 전달해주는 데 그칠 뿐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다른 이들처럼 에로스와 필로스 그리고 아가페를 경험하는 평범한 사람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힘이 솟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149쪽.  

열정의 장에서 페트루스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속 노력한다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목표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신이 우리를 얼마나 도와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150쪽.    

 “사자가 당신을 돕긴 하지만, 사자의 영역과 당신의 소망과 당신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 존재하는 게 있죠.” “그게 뭐죠?” “신성한 섬광 같은 거죠. 사람들이 운이라고 부르는 것.” 152쪽.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는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나의 간절한 소망과 나를 돕는 누군가와  그리고 나의 노력을 넘어서는 무엇, 보통은 운, 종교적으로는 은혜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지 않은가.     


산티아고의 순례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 페트루스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슴 찔리는 말이었다.

다만 한 가지만 말해 주겠습니다.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믿는 이들은 명령을 해야 할 순간에는 우유부단해지고, 복종해야 할 순간에는 반항적이 되지요. 명령을 내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명령을 따르는 것은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결코 그렇게 행동하지 마십시오. 275쪽.

산티아고순례길이 끝나는 날이었다. 오후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아직도 검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제기랄! 곰곰 생각해 보면 검 하나를 찾자고 모든 것을 내팽개친 사람을 누가 정상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설령 검을 찾지 못한다 한들 내 인생에서 실제로 달라질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난 람의 의례들을 배웠고, 나의 사자를 만났고, 개와 싸우고, 내 죽음을 미리 보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의의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자 애썼다. 검은 하나의 결과일 뿐이었다. 그것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보다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했다. 나는 그 검을 실제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페트루스가 내게 가르쳐준  훈련들을 사용하듯이. 312쪽.       

그런데 바로 그때 주인공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찾고자 했던 가르침을 깨닫는다. 자신이 그토록 찾으려고 했던  비밀은 검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깨닫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주인공은 달라진다.

나는 길 위의 모든 것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나무 그루터기, 물웅덩이, 낙엽, 그리고 근사한 덩굴식물과도.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훈련이었다. 어릴 적에 배웠지만 어른이 되어 잊어버리고 만. 그런데 신비하게도 사물들이 내게 응답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사랑으로 내게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무아경으로 빠져들었다. 두려웠지만, 이 게임을 끝까지 계속하고 싶었다. 다시 한 번 페트루스가 옳았음을 깨달았다. 스스로를 가르치면서, 나는 마스터로 변화하고 있었다. 315쪽.  

코엘료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1986년 무렵에는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연간 사백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2005년의 비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매일 사백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341쪽) 그리고 2017년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사람이 한국인만 5,100명에 달했다고 한다. ( 산티아고 순례자협회, ’ 2018년 방문자 통계‘)

코엘료가 도달한 평범함의 기적과 신비를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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