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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 년의 고독 1, 2』

by 선희 마리아

노벨문학상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되었다. 작년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우리는 얼마나 뿌듯해했으며 진심으로 축하하였던가.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하고 암담하여 우울함에 지쳐 있던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한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고 땅에 떨어진 국민적인 자부심과 자긍심을 회복하게 해 주었다. 국민을 행복하고 신명 나게 하는 것은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지성과 문화와 예술이라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속물적이고 저급한 현실에 신물이 난 국민들을 일거에 수준 높은 문화인으로 격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한강 작가가 보여준 품위 있고 기품 있는 행보와 노벨상 수상식 자리에서 보여준 신비롭기까지 하던 조용하고 단정하며 예의 바른 모습은 우리나라를 우려스럽게 바라보던 세계인들에게 우리 국민의 저력을 보게 하여 또다시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그동안 읽지 않았던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강 작가를 발굴해 낸 스웨덴 한림원의 눈 밝음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강 작가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맞서고 인간 생명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라고 밝힌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가 맞았음을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노벨문학상을 신뢰한다. 또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을 신뢰한다. 이런 신뢰를 갖게 한 또 하나의 작품이 알지도 못하는 나라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이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은 198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때까지 세계문학의 변방에 있던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을 세계 문학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그때까지 생소하였던 라틴 아메리카가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고 수십 억의 인구 중의 하나인 나까지 『백 년의 고독』을 읽게 된 것은 모두 노벨문학상 때문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콜롬비아, 생소한 긴 이름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의 작품 『백 년의 고독』을 그렇게 접하게 되었다.

마르케스가 생소했던 건 나의 무식 때문이었다. 1927년 콜롬비아 북부 해안 마을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난 마르케스는 20세기 중반 남미와 세계 문학사를 대표하는 대문호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작가였다. 2014년에 마르케스가 세상을 떠나자 2016년부터 발행된 콜롬비아 5만 페소 지폐의 인물로 등장할 만큼 콜롬비아가 자랑하는 상징적 인물이었다.


마르케스의 문학적 자양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어렸을 때 외조부모의 집에서 자랐다. 이때 외할머니로부터 지역 민담과 전설, 미신적 이야기 등을 많이 들었는데 어린 시절에 들은 민담과 미신은 후일 마르케스 작품의 기본적 토대가 되었다. 마르케스는 대학을 중퇴하고 기자 생활을 하면서 비판적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이후 파리, 뉴욕, 스페인, 멕시코 등지를 돌면서 저항적이고 풍자적인 작품을 써서 주목을 받았다.

『백 년의 고독』 은 마르케스가 콜롬비아·멕시코·프랑스의 잡지에 연재한 내용을 묶어 1967년 6월에 정식으로 출간한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로 마르케스는 198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37개국 언어로 번역돼 3,0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백 년의 고독』은 콜롬비아의 사회적·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하여, 환상적·주술적·신화적 화법으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라는 장르를 개척한 창시자로 평가되고 있다.


고전이나 걸작으로 알려진 책들은 읽기가 쉽지 않다. 마치 시험공부를 하는 것처럼 머리를 쥐어짜면서 읽어야 할 때가 있다. 분량이나 내용의 깊이 등에 압도되어 피하고 싶을 때도 많다. 그렇지만 읽고 나면 뭔가 가슴속에 가득 차오르는 것이 있다. 인간의 정신력과 상상력이 어디까지 확장되는가를 보는 기쁨도 있다. 『백 년의 고독』역시 그렇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숫자로 구분된 챕터들, 단락 구분 없이 마침표와 띄어쓰기로만 이루어진 지루하고 긴 문장들, 생소하고 복잡한 인명들과 얽히고설킨 가계들, 기이하고도 신화적인 내용들로 인해 원시 시대의 밀림지대를 헤매는 듯한 느낌이었다.

『백 년의 고독』의 줄거리는 백 년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엔디아 가문의 창시자인 1대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사촌인 우르술라와의 근친상간으로 그들을 비난하는 주민을 죽이고 고향을 떠난다. 부부는 근친상간에 대한 저주의 예언을 피하기 위해 세상과 고립된 외딴곳으로 들어가 마꼰도 마을을 세우고 새 가문의 역사를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1대부터 5대에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를 이어 사람들과 문명으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가던 마꼰도 마을은 바깥사람들과 교류하는 자손들과 마을까지 밀고 들어온 문명에 노출된다. 정부의 통제와 내란을 겪고, 철도가 건설되며 바나나 공장이 들어선다. 바이러스처럼 퍼진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마을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더욱이 4년 11개월에 걸친 대홍수를 겪어 마꼰도 마을의 모든 것은 파괴되고 폐허가 된다. 폐허가 된 고향을 다시 회복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품고 돌아온 5대손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와 사촌인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근친상간으로 백 년에 걸쳐 고립하여 살면서 피하고자 했던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를 낳게 되고 저주의 예언을 피하기 위해 이뤘던 마꼰도 마을과 부엔디아 가문은 몰락한다.

유명한 소설들이 그렇듯이 『백 년의 고독』도 첫 문장이 대단히 유명하다고 한다. 마르케스는 『백 년의 고독』을 쓰기 위해 23년을 기다렸는데 그것이 바로 첫 문장을 시작하기 위한 기다림이었다고 한다. 마르케스는 그렇게 기다렸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하여 18개월 동안 6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완성시켰다 한다.

특히 1944년 <집 La casa>이라는 제목으로 소설 하나를 쓰려고, 현재의 『백 년의 고독』에 있는 첫 행을 썼지만 그 스스로 하려고 하는 얘기를 믿을 수가 없었고, 자신이 쓰려고 하는 것이 믿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테크닉적· 언어적 요소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23년 동안 생각하고 18개월에 걸쳐 집필한 『백 년의 고독』이 1967년 6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수다메리까Sudamerica 출판사에서 출판되었을 때는 전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기에 이르렀다. 『백 년의 고독 2』 308쪽.

마르케스가 그렇게 기다렸고 공들였다는 『백 년의 고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많은 세월이 지난 뒤, 총살형 집행 대원들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아버지에 이끌려 얼음 구경을 갔던 먼 옛날 오후를 떠올려야 했다. 그 당시 마꼰도는 선사시대의 알처럼 매끈하고, 하얗고, 거대한 돌들이 깔린 하상(河床)으로 투명한 물이 콸콸 흐르던 강가에 진흙과 갈대로 지은 집 스무 채가 들어서 있던 마을이었다. 세상이 생긴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많은 것들이 아직 이름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지칭하려면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켜야만 했다. 『백 년의 고독 1』 11쪽.

그리고 6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는 그때 비로소 아마란따 우르술라가 자신의 누나가 아니라 이모였다는 사실을 알았고,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리오아차를 습격한 것은 단지 이모와 자기가 가장 복잡하게 뒤얽힌 핏줄의 미로 속에서 서로를 찾아, 마침내 가문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신화적인 동물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백 년의 고독 2』305쪽.

마르케스 문학의 정수는 한 가문의 100년에 걸친 이야기를 유유하고 도도하게 풀어내는 전개와 문장력에 있다.


주인공 부엔디아 가문의 4대손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정부인 빼뜨라 꼬데스에게 빠져 정부의 집에서 기거한다. 오랫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던 세군도가 긴 장마로 집에 머물게 되자 아내인 페르난다는 오랜만에 집에 있게 된 남편이 어려운 가정의 경제를 돕는 일을 하기 원한다. 그러나 남편이 가문의 내력을 찾는다고 백과사전을 뒤지는 것으로 일을 삼자 페르난다는 그동안 참았던 잔소리를 폭풍처럼 쏟아붓는다.

그가 곡식 창고의 절박한 문제들로부터 더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페르난다의 노여움은 더 커져갔고, 마침내 우발적으로 해대던 불평과 아주 가끔씩 하던 하소연이 억누를 수 없이 풀린 격류를 타고 넘쳐흘렀는데, 노여움의 표출은 어느 날 아침에 기타의 단조로운 저음처럼 시작되더니, 하루가 지나감에 따라 그 톤이 갈수록 풍부하고 웅장하게 높아갔다. 이튿날 아침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녀가 불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그제야 비로소 당시 빗소리보다도 더 유려하고 컸던 그 윙윙거리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졌는데....( 이후 5페이지에 걸쳐 페르난다의 잔소리가 계속된다.) 174-179쪽.

이렇게 시작된 페르난다의 잔소리는 무려 5쪽에 걸쳐 기다란 한 문장으로 계속된다. 이 부분을 읽고 있으면 페르난다의 잔소리가 실제로 들려오는 듯한 기분까지 들게 하며 마술적 사실주의의 창시자라는 마르케스의 문학적 기교를 확연하게 보게 한다.

마르케스는 부엔디아 가문의 백 년 동안의 은둔적 주거지였던 마꼰도를 폐허로 만드는 4년 11개월 2일 동안의 장마를 이렇게 묘사한다.

비는 사 년 십일 개월 이틀 동안 내렸다. 부슬비라도 내릴 때면 날씨가 개이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들 정장을 차려입고 병에서 회복되어 가는 사람 같은 얼굴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이내, 잠깐 비가 걷히는 듯하는 것은 오히려 더 억센 비가 쏟아지려는 징조라고 해석하게들 되었다.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 요란스런 폭풍우를 퍼부어댔고, 북쪽에서 내려온 태풍은 지붕들을 날려버리고 벽들을 무너뜨리고 바나나 농장에 있는 나무들의 마지막 뿌리 밑둥까지 죄다 뽑아버렸다. 우르술라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그 불면증이 만연하던 시절에도 그랬다시피, 장마 자체가 사람들에게 그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방책들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163쪽.

부엔디아 가문의 창시자였던 우르술라의 쇠락과 노화는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과 겹쳐진다. 우르술라의 죽음으로의 이행을 마르케스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살아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몸이 줄어들어 태아처럼, 미라처럼 되어갔고, 생애 마지막 몇 달 동안에는 잠옷 속에 말려든 작은 살구씨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는데, 언제나 쳐들고 있던 팔은 결국 거미원숭이의 다리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가 며칠이고 꿈쩍도 하지 않은 때도 있어 산따 소피아 델 라 삐에닷은 그녀가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흔들어보아야 했고, 스푼으로 설탕물을 떠먹이기 위해 그녀를 자기 무릎에 앉히곤 했다. 우르술라는 흡사 방금 태어난 할머니 같았다. 202쪽.

부엔디아 가문을 열게 했던 1대 선조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사촌인 우르술라의 근친상간은 결국 그들을 비난하는 주민을 죽이고 고향을 떠나 스스로 격리하여 마꼰도 마을을 세우고 고립의 역사를 끌어간다. 그렇지만 돌아온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근친상간으로 6대에 걸쳐 그토록 두려워하던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를 낳아 결국 예언은 이루어지고 마꼰도 마을과 부엔디아 가문은 몰락한다.

탯줄을 자른 뒤 산파는 아우렐리아노가 비춰주는 등불에 의지해 아이의 몸을 뒤덮고 있던 파란 점액질을 수건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갓난아이를 엎어놓았을 때 비로소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돼지꼬리였다. 299쪽.

『백 년의 고독 2』 마지막을 이렇게 끝내고 있다.

그는 그때 비로소 아마란따 우르술라가 자신의 누나가 아니라 이모였다는 사실을 알았고,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리오아차를 습격한 것은 단지 이모와 자기가 가장 복잡하게 뒤얽힌 핏줄의 미로 속에서 서로를 찾아, 마침내 가문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신화적인 동물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305쪽

이렇게 긴 독서의 대장정이 끝났다. 대단한 작가요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인간의 무한대의 정신력과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고 그것을 포착하고 표현해 내는 작가의 능력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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