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저명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읽었다. 『아주 편안한 죽음』은 작가의 실제적 경험을 써 내려간 에세이에 자전적 소설로 보부아르가 평생 주장하여 왔던 실존주의를 문학적 글쓰기로 증명해 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64년에 발표된『아주 편안한 죽음』은 시몬 드 보부아르를 세계적으로 알린 『제2의 성』(1949년) 보다 더 높은 수준에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소설의 제목이 되는 『아주 편안한 죽음』은 소설의 이 부분에서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엄마는 비교적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나를 바보같은 사람들에게 맡겨놓지 마라. 이렇게 호소할 수 있는 이가 한 명도 없는 처지에 놓인 모든 사람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기댈 곳 하나 없이, 무심한 의사들과 과로에 지친 간호사에 의해 좌우되는 일개 환자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느낄 때 그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공포가 엄습할 때 이마에 손을 얹어 줄 이 하나 없을 때, 고통이 휘몰아칠 때 고통을 달래주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죽음의 정적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이라도 늘어놓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 그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말이다. “그녀는 스물네 시간 만에 40년은 더 늙은 듯 했다.” 라는 문장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아직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다인 병실에서는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면 빈사 상태에 빠진 환자의 침대를 칸막이로 가린다. 그런데 그 환자는 본 적이 있다. 그 다음 날로 비게 될 다른 침대들을 이 칸막이가 둘러싸고 있던 모습을. 그래서 그는 알게 된다. 나는 어디에서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검은 태양으로 인해 몇 시간 동안 눈이 먼 상태로 있었던 엄마를 그려 보았다. 벌어진 두 눈의 확장된 동공 속에 깃들어 있었을 극심한 공포를. 엄마는 아주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운이 좋은 자의 죽음인 셈이었다. 138쪽.
보부아르는 자신의 엄마는 비교적 편안한 죽음의 과정을 거쳤다고 회고한다. 두 딸이 엄마의 곁에서 시시각각 닥쳐오는 죽음의 불안을 함께 견뎌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보부아르는 엄마와 같은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죽음과 맞서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공포를 함께 나눌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한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보부아르는 평소 자신과 우호적이지 않은 엄마가 욕실에서 넘어져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연락을 받는다. 대퇴골 경부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을 때는 곧 나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엄마와 가족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 생활을 즐긴다. 그러나 피검사로 인해 엄마의 병이 완치될 수 없는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보부아르와 동생은 엄마가 죽음으로 향해 가는 길에 동행하며 엄마의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길지 않은 6주 동안 보부아르는 편하지 못했던 엄마와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보고 느꼈던 일들, 죽어가는 엄마와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드러나는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써 내려간다.
보부아르는 아름답고 귀엽지만 까탈스럽고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던 칠십칠 세의 엄마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비록 쇠약해지긴 했지만 어머니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것도 사실이었다. 16쪽.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보부아르는 엄마의 관절염과 낙상으로 인한 부상을 나이 든 노인의 당연한 일로 본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보부아르 엄마의 나이가 칠십칠 세라는 것을 알고는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의 나보다 불과 일곱 살 더 많은 내 또래였던 것이다. 지금 나는 아픈 데도 없고 약도 많이 먹지 않지만 몇 년이 더 지나 보부아르 엄마의 나이가 되면 나도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남의 이야기라고 볼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칠십 대 초반까지 건강하고 씩씩하게 사회활동을 하다가 칠십 대 후반 무렵 갑자기 치매가 오거나 쓰러지거나 하여 급격하게 건강이 무너지는 경우를 자주 보고 듣는다. 건강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상적 삶이 무너진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사례들은 그런 일을 겪는 비슷한 연령대에게는 충격이고 두려움이다.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년이 되면 하루하루를 지뢰밭을 걷는 기분으로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면서 살게 된다.)
엄마는 천국이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고 병에 걸렸는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현세에 무척이나 집착했고, 죽음을 동물적으로 두려워했다. 종종 반복적으로 꾸곤 하는 악몽에 대해 엄마가 동생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누군가 날 쫓아오는 바람에 달리고 또 달리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벽에 부딪히게 돼. 벽을 뛰어넘긴 해야 하는데 그 뒤에 뭐가 있는지 모르잖아. 그래서 난 무서워하지.”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건 아니야.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서운 거지.” 18쪽.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죽음을 곁에 두고 산다. 언젠가는 나의 일이 될 죽음이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찾아 올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 하는 문제 때문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고 어떤 고통과 희생, 외로움과 주변 사람들에게 지게 될 신세를 생각하며 죽음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더 두려워한다.
오랫동안 엄마는 자신이 젊다는 생각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사위가 말실수를 하자 화가 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답한 적도 있었다. “내가 늙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고 그 때문에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네. 그러니 내가 늙었다는 걸 떠올리게 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구먼.” 사흘 동안 안갯속에서 헤매던 상태에서 벗어나자, 돌연 엄마는 명석하고도 단호한 태도로 일흔여덟 살이라는 자신의 나이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 것이었다. “인생의 책장을 한 장 넘기려고 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23쪽.
늙었다는 것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그다음 단계가 죽음이라는 것도 본인이 제일 잘 안다. 그런데 주변이나 자식들이 이제 죽을 사람이니까,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까 하는 눈치를 보이고 귀찮아하는 모습을 보이면 노인들의 자존감은 땅으로 떨어진다. 안 그래도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고 짐이 될까 봐 엄청나게 위축되어 있는 형편에 가족들이나 주변에서 자신을 죽을 사람 취급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사람의 수명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늙고 병들었을 때 가장 힘든 사람은 노인 자신이다. 자기의 몸과 마음이 늙어가고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노인들은 위축된다. 나이 들고 노쇠해졌다는 것만으로 노인들은 스스로 충격을 받는다. 노인들의 자존감을 지켜드리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어려운 일일까. 노인은 이미 노인이라는 것으로 차별받고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언제나 엄마를 살아있는 존재로 여겨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거라고 말했을 때, 그건 내가 했던 다른 수많은 말처럼 빈말에 불과했다. 그런 내가 이번에 처음으로 엄마에게서 산송장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26쪽.
가끔 병원에 가서 누워있는 환자들, 특히 노인 환자들을 보면 존엄성은 없고 존중도 들어 있지 않은 치료의 대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인 환자들은 이름이나 그들의 삶,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생각이나 마음, 영혼은 없는 육체로만 취급되는 것을 본다. 그들은 항의하거나 거부할 힘이 없다. 자신들을 다루는 대로 당할 뿐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존중, 인간에 대한 예의는 노인 환자들에게는 사치이다. 병들고 노쇠한 육체만 보이고 육체적 질병만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은 병원에서 몸과 마음의 아픔과 인간으로서의 관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정신이 혼미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신다 해도 마찬가지일 거야.“라고 동생에게 말했었다. 이날 밤 이전까지 내가 느꼈던 슬픔은 모두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슬픔에 잠겨 있을 때조차도 정신을 차린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느낀 절망감만큼은 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서 울고 있는 듯했다. 나는 사르트르에게 엄마의 일에 대해, 아침에 본 모습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 입에서 내가 읽어 낸 그 모든 것에 대해 들려주었다. 받아들여지지 못한 탐욕, 비굴함에 가까운 고분고분함, 희망, 비참함, 죽과 대면해서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내내 느껴 왔을, 하지만 털어놓지 못했던 고독함에 대해서, 사르트르에 따르면 내가 더 이상 입을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내 얼굴에 엄마의 입을 포개어 놓고 나도 모르게 그 입 모양을 따라 했던 모양이다. 내 입은 엄마라고 하는 사람 전부를, 엄마의 삶 전체를 구현하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나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41쪽.
나도 그랬다. 아버지의 죽음, 엄마의 죽음 모두 비현실적이었다. 보부아르의 말대로 사별의 슬픔은 어떤 슬픔과도 구별되는 슬픔이었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나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조문객을 예의 있게 맞이해야 하고 장례의 모든 일정을 차질 없이 치러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부모님을 잃은 상실의 슬픔보다는 장례의 절차와 과정을 잘 치러내야 한다는 생각이 부모님과 이별하는 슬픔을 능가했고 압도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은 울지 않는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허공에 둥둥 뜬 듯한 기분으로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피곤하여 기진했다. 그리고 눈을 뜨고 맞이한 날은 참으로 이상했다. 나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이 세상에 안 계시는데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나도 밥 먹고 외출하고 일상생활을 계속했다. 마치 원래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부모님만 쏙 빠져버린 채 이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 마음도 여전했다. 그런데 그때 해소시키지 못하고 터뜨리지 못했던 슬픔과 상실감은 지금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난 언제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왔다. 사별, 가장 큰 상실이다.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상실을 말하지 않고 애써 가슴에 묻고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저마다의 가슴속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의 심연을 갖고 있을 것이다. 보부아르의 이 책이 자신의 엄마를 보내는 애도의 글쓰기이며 이 글쓰기로 인해 보부아르의 상실감이 치유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마다 자기의 상실을 위로하고 치료해 가는 무언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동생과 통화를 했다. 한밤중에 엄마가 의식을 되찾았다고 했다. 수술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으며 그로 인해 크게 놀란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나는 택시를 탔다. 매번 오고 가던 길이었다. 햇살이 따사롭고 하늘은 푸른, 여느 때와 같은 가을날이었으며 같은 병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맞이하게 될 문제만은 달랐다.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가 아니라 임종 직전의 환자를 보러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에 병원에 올 때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무심하게 대기실을 통과하곤 했다. 비극은 닫혀있는 저 문들 뒤에서 벌어지고 있을 뿐, 문 밖을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게 닥친 비극이 되고 말았다. 59쪽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차를 타고 올라갈 때의 풍경은 예전과 달랐다. 먼저는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누구도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이 상황이 언젠가는 돌아가시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다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이제 세상 어디에서도 엄마, 아버지는 찾을 수 없구나,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금까지 보던 하늘이나 풍경이 아니었고 부모님이 빠진 풍경과 하늘이 너무나 낯설고 생소했다. 그때의 낯설고 생소함은 부모님이 살아 돌아오시지 않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부모님이 계실 때의 세상과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은 전혀 달랐다.
”수술을 받게 하시면 안돼요.“라는 말을 들었는 데도 나는 엄마의 수술을 막지 못했다. 오랜 고통으로 인해 환자들이 괴로워하는 걸 보았을 때, 나는 그런 상황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환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 나 같으면 환자를 죽게 했을 거예요.“ 그런데 처음으로 이러한 시련이 닥쳐오자 나는 머뭇거리고 말았다. 내 개인적인 양심을 버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양심에 굴복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 당신은 의학 기술에 굴복한 거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거지.“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과 예측, 그리고 결정을 무기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악순환에 갇힌 셈이었다. 환자는 의사들의 소유물로 전락헤 버렸다. 그러니 그들의 손아귀에서 환자를 빼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수요일에는 수술과 안락사 중 양자 택일을 해야만 했다. 당시로서는 굳어가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게 되면 엄마가 장폐색증을 견디면서 지옥을 맛봐야 하는 처지에 놓일 게 뻔했다. 의사들이 안락사를 거부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요일 아침 6시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도 용기를 내서 N박사에게 ”그대로 돌아가시도록 어머니를 내버려 두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머니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며서 말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N박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아는 자 특유의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나를 냉대했다.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머니에게서 몇 년 더 사실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셈입니다.“라고. 내가 엄마를 죽게 내버려 두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은 그래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핑계를 대보아도 내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나를 두렵게 했다. 79쪽.
이런 상황을 겪어 본 사람도 많을 것이고 앞으로 겪게 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부모님의 생명 연장을 놓고 거부권을 행사할 자녀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지만 부모님의 생명 연장이 과연 부모님을 위한 것일까. 생명을 연장시킨다 해도 그분들이 완전히 회복되어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노쇠가 사라지지 않고 일시적 회복은 된다 해도 다시 그런 상태로 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힘든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환자 본인에게나 주변 사람들을 돕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감히 부모님의 생명 연장을 거부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의 세대는 당신들의 마지막을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의 생명 연장에 대한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놓아 자식들에게 고통스러운 부담을 넘겨서는 안 된다.
영생. 그것은 지상에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엄마는 영생을 거부했다. 물론 엄마의 지인 중 독실한 신자들은 우리가 엄마의 의사를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억지로라도 고해 신부를 데려오려고 했다. 어느 날 아침, 동생은 ”면회 금지“ 팻말이 걸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병실 문이 열리면서 신부의 옷자락이 나타나는 걸 보았다. 동생은 화를 내면서 신부를 쫓아냈다. 84쪽.
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영생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고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영생을 믿는다. 믿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영생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말을 이렇게 명확하게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영생은 죽음의 다른 말이다. 죽음을 거쳐야 얻는 것이다. 이것을 누구나 알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영생은 죽음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왜? 죽음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놓기가 무섭기 때문이다. 보부아르의 실존적 사유와 용기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여태껏 나는 한 번도 엄마가 그렇게나 불행한 표정을 짓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날 엄마는 자신이 죽게 될 거라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는 엄마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푸페트가 도착한 후에도 나는 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 너희 둘 다 여기에 있는 걸 보니 내 상태가 더 나빠진 게로구나.” “우린 항상 여기에 있었잖아요.” “둘이 같이 있었던 건 아니지.” 그 말에 나는 다시 화가 난 척 했다. “엄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서 있는 거예요. 제가 있아서 걱정되신다면 저는 갈게요.” “아니다. 아니야.” 엄마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부당하게 차가운 태도로 엄마를 대하고 나니 내 마음 역시 좋지 않았다. 진실이 엄마를 짓누르고 있던 그 순간, 그래서 말로나마 그로부터 벗어나는 게 필요했을 그 순간, 우리는 엄마에게 침묵할 것을 강요했던 셈이다. 불안한 내색을 감추길, 가급적 의구심을 드러내지 말길 엄마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일평생 그래왔듯, 여전히 엄마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느낌과 자신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달리 선택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93쪽.
누워있는 사람들은 곁에 있거나 돌보는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한다. 누구도 솔직하게 자신의 병세에 대해 말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들은 주변 사람들의 기미를 살피고 눈치를 본다. 누구도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당신은 곧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마지막 말을 하려고 해도 애써 회피하거나 기회를 주지 않는다. 환자에게 마지막 부탁이나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왜? 거기에 대한 대꾸나 마땅한 위로와 대답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푸페트가 병원 정원으로 우리를 마중나왔다. “돌아가셨어.” 우리는 병실로 올라갔다. 그토록 기다렸으면서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시신의 모습을 한 존재가 엄마 대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시신의 손과 이마는 차가웠다. 그건 여전히 엄마였지만, 앞으로 엄마는 영원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움직이지 않는 얼굴을 둘러싼 가제 천이 턱을 받치고 있었다. 124쪽.
한 생명의 삶이 끝났다. 한 생명의 죽음을 위해 여러 사람이 같이 분투했고 그 곁을 지켰다. 서운하고 부족한 점은 있을지라도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한 것은 고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사들 말로는 촛불이 꺼지듯이 돌아가셨대.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동생은 흐느끼며 말했다. 간병인이 답했다. “하지만 보호자분, 제가 보증하건대 어머니께서는 아주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어요.” 127쪽.
여기에서 책의 제목인 “아주 편안한 죽음”이 나온다. 아주 편안한 죽음.
사람들이 죽음을 맞는 방식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거나 원한다고 해도 꼭 그렇게 죽을 거라고 자신할 수 없다. 다만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맞이할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 이것이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산 자들의 몫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