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가
청순했던 대학생이었다
흰색 교복 상의와
검정 교복 치마가
얌전했던 대학생이었다
무슨 말을 하여도
웃기부터 하였고
무슨 일을 시켜도
못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은 학교에서
음악에 특별한 재주를 가진
혼자 걷지 못하는 남학생과
연인이었던 대학생이었다
한국어 선생님이 되겠노라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던 대학생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한참 뒤
낌리은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국에 왔노라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하루종일 깻잎을 따고 있노라고.....
낌리은의
크고 맑은 눈이 종일 어른거렸다
낌리은의
수줍은 미소가 종일 가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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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에 캄보디아에 교환교수로 간 적이 있었다. 한 학기를 머무르면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학생들은 코리안 드림에 불타 있었고, 한국어 공부에 열심이었다.
대학생들이었지만, 우리나라 6,70년 대의 고등학생들 같았다. 교복을 입었고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 학생들은 순박하기 그지없어서, 무슨 말을 물어봐도 그냥 웃었고, 무슨 부탁을 하여도 거절할 줄 몰랐다.
낌리은은 그중에서도 특별히 순하였고 조용하였다. 웃는 모습이 눈에 띄게 예뻤다.
학교에는 두 다리가 불편한 남학생이 있었다. 일어서지도 못하였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 이상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우울한 모습이었던 남학생은 탁월한 기타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누가 그 남학생을 도와줄까 궁금했는데, 마음씨 착한 낌리은이 그 남학생의 연인이라는 것이었다. 역시 낌리은이라는 생각을 했고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 학기를 마치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고, 가끔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전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낌리은이 전화를 했다. 서툰 한국어로 떠듬떠듬 이야기를 하였다. 한국에 왔다고. 어디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대답했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 깻잎을 딴다고 했다. 하루 종일 깻잎을 딴다고 했다.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없어 통화는 끊겼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서성였다.
캄보디아에서는 그래도 몇 안 되는 대학생이었는데....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도움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연인과는 어찌 되었는지... 강의실에서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며 수줍게 웃던 낌리은의 미소는 어찌 되었는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하루종일 깻잎을 따는 낌리은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트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깻잎을 볼 때마다 낌리은을 생각한다. 부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시간 속에 살고 있기를 기도한다. 슬픈 미소가 아닌 밝은 웃음을 웃으면서 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