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9) 달바꿈, 달밭굼, 달밭꿈, 달전곡
[일러두기] 이 글에서 밑금 그은 붉은 글자는 옛 배달말 적기에서 쓰던 아래아(.)가 든 글자다.
동해시 비천동 뒷골 위쪽에 ‘달밭굼’이라고도 하고 ‘달바꿈’이라고도 하는 곳이 있다. 달을 따는 밭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달을 바꿀 수 있는 곳은 더더욱 아닐 텐데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이름일까.
≪동해시 지명지≫를 보면, ‘달밭’을 ‘딸기밭’으로 보고 “산딸기가 많이 나서 생긴 이름”(147쪽)이라고 추정하여 말해놓았다. 그러나 지역 말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설명에 고개를 삐끗 꼴 것이다. 동해나 삼척 지역 말로 ‘딸기’는 ‘딸, 딸루’다. ‘뱀딸기’는 ‘뱀딸’이라고 했다. 산딸기라고 다를까. 산딸, 나무딸, 산딸구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달]이라고 보드랍게 말하는 사람은 여지껏 본 일이 없다. 백 걸음 물러나 산딸기가 많이 나는 굼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면 ‘딸밭굼’이나 ‘산딸굼’, ‘산딸구미’처럼 되어야 하지 않을까.
조금 달리 생각하여 ‘달밭이 있는 굼’으로 보면 ‘달밭+굼’으로 쪼개볼 수 있겠다. 마침 배달말 사전에서 ‘달밭’을 올림말로 두었는데, “달뿌리풀이 많이 난 곳”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하면 ‘달뿌리풀’는 어떤 풀일까?
볏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2미터 정도이며 잎은 어긋난다. 8~9월에 자주색 꽃이 원추(圓錐) 화서로 핀다. 냇가에 서식하며 한국의 경북ㆍ제주ㆍ함경,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표준국어대사전≫
달뿌리풀이라는 이름은 ‘달’과 뿌리풀의 합성어로, 지상으로 기는 줄기를 뻗는 달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달은 갈대와 유사한 식물로 달뿌리풀의 옛이름이다. (가운데줄임) ≪조선식물향명집≫은 ‘달’로 기록했으나 ≪조선식물명집≫에서 '달뿌리풀'로 개칭했다. (조민제 외 편저,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심플라이프, 2021, 204)
달뿌리풀은 땅바닥에 기는 줄기를 뻗는 달(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딴 이름으로 ‘덩굴달’이라고 하는데 삿자리를 매는 데 썼다고 한다. 이때 달뿌리는 ‘(땅바닥을) 달리는 뿌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달밭굼은 달뿌리풀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달뿌리풀은 잔자갈이나 모래가 많은 냇가나 도랑가에 잘 자라는데 달밭굼이 있는 뒷골은 누가 보더라도 물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다.
이러한 지적을 의식했는지 구호동에 있는 ‘달바꿈’은 달리 설명한다.
옛날부터 산딸기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 하여 그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하나, 딸기는 옛말에서도 첫소리가 된소리이거나 겹자음인 데다가 현대어와 마찬가지로 2음절 단어였으므로 그 개연성이 적은 듯하다. ‘달+밭+굼(구미)’의 복합으로 생성된 지명으로서 높은 곳의 밭에 있는 후미진 곳(혹은 마을)을 뜻한 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된다. 이 달바꿈을 한자로 ‘達田谷’(달전곡)이라 적은 사실도 참고된다.(340쪽)
내 생각도 같다. ‘달밭’에서 달은 고구려말에서 온 ‘달’(達)로 보면 저절로 땅이름이 생겨난 까닭을 설명할 수 있다. ‘달’은 고구려말 흔적으로 ‘높다’, ‘산’이라는 뜻이다. 달밭은 높은 곳에 있는 밭이요 달밭굼은 달밭이 있는 굼(골짜기)이다. 동해시 땅이름에서 달방마을,
정리하면 ‘달바꿈’은 ‘달+밭+굼’인데, 이 말이 ‘달밭굼→달받꿈→달바꿈’으로 소리가 달라지면서 생겨난 재미난 땅이름이다.
‘달’이란 풀은 도대체 뭘까? 옛말에서는 분명 ‘달’과 ‘갈’을 구분했다. ≪훈몽자회≫(최세진, 1527)만 봐도 “가(葭), 위(葦), 로(蘆)”는 ‘갈’로, “란(薍), 적(荻), 겸(蒹), 환(萑), 담(菼)”은 ‘달’로 새겼다. 이들 한자에 달린 풀이를 보면 갈대(葦)과 비슷하지만(似) 작거나(小) 어리다(子草, 未秀)고 써서 ‘달’은 ‘갈(대)’와 비슷하지만 키 작은 풀로 구분했다. 조선 말 ≪녹효방≫(이종진, 1873)에는 ‘野蔓田蘆’(들 야, 덩굴 만, 밭 전, 갈대 로)로 쓰고 ‘따에벗어나난갈’이라고 설명을 달았다. 달이란 풀은 ‘땅(바닥)에 벋어 나가는 갈(대)’라고 말해놓았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조선식물향명집≫(조선박물연구회, 1937)은 ‘달’과 ‘갈’을 구분하였지만 광복 뒤에 나온 ≪조선식물명집≫(조선생물학회, 1949)은 ‘달’을 ‘달뿌리풀’로 이름을 바꾸면서 ‘달’이란 풀 이름은 영영 사라졌다. 오늘날 ‘적(荻), 환(萑), 담(菼), 란(薍)’은 ‘물억새’로 새기고, ‘겸(蒹)’은 ‘갈대’로 새겨서 ‘물억새’가 곧 ‘달’이란 풀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잘라 말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달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