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우당탕탕, 또시작? 또, 시작!
당근마켓, 여러모로 참 도움이 많이 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중고 물품 거래나 나눔을 할 때, 동네 생활 정보를 알아볼 때, 모임을 열 때 등등. 이번에는 청소년 진로 멘토링에 참여할 멘티 모집에 도움이 됐다. 발등에 불똥 떨어졌을 당시 간절한 마음으로 올렸던 당근마켓 홍보글을 통해 메시지 한 통이 왔다. 중학생 2학년 여자아이의 어머니였다. 연락의 내용은 ‘아이가 집에서 도통 말을 안 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모르겠다’라는 어머님의 하소연이었다. 문득 거절만 당해왔던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고 연락해준 어머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자녀와의 대화가 얼마나 어려우면 방꾸쟁이들에게 연락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여느 학부모들과 같이 어머님께서도 자녀의 학업에 관심이 많았다. 멘토링이 아이의 학습에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어머님께서는 방꾸녀가 자기주도학습 매니저 겸 입시 컨설턴트로 일했기 때문에 해당 분야에 대해서 도움받기를 희망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소통을 담당하던 방꾸녀는 멘토링이 학업 중점이 아닌 ‘진로·꿈찾기’ 중점임을 알리고, 멘토링 기간 동안 멘토와 함께 공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방꾸녀의 말에서 아이들을 생각하는 진정성을 느꼈는지 학업과 관련된 멘토링이 아니더라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흔쾌히 밝혔다. 사교육계에서 2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며 갈고 닦았던 방꾸녀의 학부모 소통 능력과 설득력이 빛을 발하는 듯해 보였다.
조금 뒤, 풋풋함이 가득할 나이의 여중생 한 명으로부터 온라인 신청서가 날아왔다. 멘티 하율이와 처음으로 소통하는 순간이었다. 온라인 신청서에는 주관식 문항이 2개 포함되어 있었는데, 당시 하율이는 마지못해 신청서를 적은 사람처럼 보였다. 어머니께서 멘토링을 받아보라고 등 떠민 듯한 느낌이었다. 방꾸쟁이들은 ‘우리가 하율이면 똑같이 하기 싫었을걸? 저 나이 때는 입시나 진로 같은 단어는 듣기만 해도 싫지 뭐.’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겼다.
신청서상 멘토링 참여 목적을 묻는 말에 대해서 하율이는 “몰라요.”라고 답변했고, 꿈에 대해서 묻는 말에는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세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답변들은 방꾸쟁이들을 실망시키기보다는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짧은 세 글자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지 상상하면서 얼른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책이 나오고서야 듣게 된 사실인데, 하율이는 자신이 신청서를 적은 게 아니라고 했다.)
운 좋게도 하율이는 방꾸녀와 집이 가까웠다. 그리고 감사히도 하율이 어머니께서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사실 방꾸녀가 하율이와 직접 연락해 만남 약속을 잡으려고 시도했으나, 하율이가 방꾸녀의 전화번호를 차단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고의는 아니었고, 스팸으로 착각해 차단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방꾸쟁이들은 한바탕 웃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차단을 당한 상황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웃겼다. 그냥 멘티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던 것도 같다. 어쨌거나, 하율이와의 첫 만남은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이루어졌다. 갑작스레 하율이 친구인 윤이가 동참하게 되면서 2명의 멘티와 함께 만남을 가졌다. 쏘 럭키비키.
두 멘티를 처음 만난 순간,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도 누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각자의 얼굴에 ‘제가 강하율이에요...’, ‘제가 오윤입니다!!!’라고 쓰여 있는 듯했다.
하율이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학원의 스케줄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대화할 때 혼이 다 빠져 지쳐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질문에 답을 하거나 문제를 푸는 것처럼 ‘생각을 정리해 꺼내 놓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게 뭐든지 귀찮아 보였다. 그럼에도 강도 높은 학원 생활 덕분인지 학교 성적은 잘 나오고 있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의욕만 불어넣을 수 있다면 훨씬 높은 수준의 공부도 잘 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이는 주요 교과인 수학·영어 학원만을 다니고 있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편인지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고, 꿈을 찾아 도전하고픈 욕구가 컸다. 또,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도가 굉장히 높았고, 큰 사람이 되겠다는 야망도 가지고 있었다.
두 멘티는 스케줄이나 여유에서부터 오는 차이도 있었겠지만, 성격 자체가 달라 보였다. 하율이는 내향적이고 조용했으며, 윤이는 외향적이고 활발했다. 하율이가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편이라면, 윤이는 파이팅을 외치면서 해낼 것만 같았다. 그렇게 두 멘티의 첫인상이 방꾸녀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살짝 덧붙이자면, 두 멘티는 서 있는 자세, 앉아 있는 자세부터 너무나 상반됐는데, 어떻게 이 둘이 친구가 됐을지 궁금할 정도로 달랐다.
방꾸녀는 첫인상에서 벗어나 하율이와 윤이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고자 인터뷰를 시작했다.
□ 방꾸녀: 너네는 나중에 뭘 하면서 살고 싶어?
□ 하율·윤: 음..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아이들이 무엇을 할지 몰라 하니까 부모님들께서 멘토링의 필요성을 느끼고 권유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방구녀: 너네는 언제 가장 행복해?
□ 하율: 놀고 먹고 잘 때요.
□ 윤: 놀 때가 제일 행복해요.
아무리 학원을 많이 다니고 공부를 잘한다지만 영락없는 아이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방꾸녀: 요즘 고민은 뭐야?
□ 하율: 나중에 뭐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 윤: 고등학교를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이 제일 커요.
하율이는 얼핏 보면 생각을 안 하고 대답하는 아이처럼 보였지만, 계속해서 대화하다 보니 오히려 생각이 많아서 이야기로 정리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꺼내 놓는 것이 어려우니 짧은 대답을 내놓거나 모르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남들은 당장 내일 학원 가는 것을 고민하고 입시를 생각하는 시기에 하율이는 ‘삶 전반에 대한 방향성’을 고민하는 듯 보였다. 방꾸녀는 괜스레 하율이가 먼 미래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윤이는 대한민국 엄마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똑똑한 아이였다. 어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게 대학교 입시에 도움이 될지, 어떤 대학교 어떤 학과에 진학해야 자기의 진로 선택 폭이 넓어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고 움직일 줄 아는 아이였다. 그야말로 자기주도 학습에 최적화된 ‘엄친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윤이 같은 청소년에게는 자신이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어른이 주변에 있으면 성장에 도움이 된다. 그 어른과 비슷해지거나 그 사람을 넘어서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할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낼 힘이 있는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방꾸녀는 각자 뚜렷한 특징을 가진 멘티들과 함께할 생각에 심장이 더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 방꾸녀: 학원에 안 가도 되는 자유로운 하루가 주어진다면 뭘 해보고 싶어?
□ 하율: (상상을 하는 듯 배시시 웃으며) 하루 종일 놀아보고 싶어요.
□ 윤: 저는 학원에 안 가는 날도 있어서 딱히 뭘 하고 싶다...라는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저도 그냥 놀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방꾸녀는 두 멘티의 작은 꿈인 ‘종일 놀아보기’를 꼭 이루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얼핏 보면 노는 것은 자아 탐색이나 진로 탐색과 관련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재밌게 놀아봄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줄 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아이들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진로를 설계한다. 어려움을 마주해도 결국 넘어선다.
방꾸쟁이들은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하지만, 똑똑함을 발휘할 만한 기회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싫어하는 것과 하기 싫은 일’은 학교와 학원에서 충분히 알게 되기에, 그 밖의 공간에서만큼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온종일 놀아봄으로써 느낀 즐거움이 여름방학을 마치고 2학기를 보내기 위한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꾸녀에게는 멘토링의 기억이 먼 훗날 두 멘티에게 작은 웃음이라도 줄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이런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아이들이 하루라도 마음껏 놀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되었다. 방꾸녀는 그 마음을 담아 두 멘티에게 어떻게 놀고 싶은지를 물었다.
□ 방꾸녀: 그럼 그렇게 하루를 쭉 놀면 뭐하고 싶어?
□ 하율: 안 놀아봐서 잘 모르겠어요.
□ 윤: 맞아요, 얘는 맨날 학원에만 있긴 해요.
□ 하율: 아 일단 마라탕을 먹고요.
□ 윤: 저희 둘이 마라탕 같이 먹어야 만 원 겨우 넘어요.
□ 하율: 영화 보면 좋겠어요.
□ 윤: 아! 여름이니까 수영장이나 물놀이 가고 싶어요!!
아이들의 꿈은 소박했다. 종일 논다는 작은 꿈의 목록으로 나열된 것들은 ‘마라탕 먹기’, ‘영화 보기’, ‘수영장 가기’ 정도였다. 나중에 자세히 들어 보니 하루라는 시간이 마음껏 놀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두 멘티 모두 조금 더 긴 휴가가 주어진다면 멀리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얘기했다. 아이들에게 벌써부터 휴가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니 한편으로 마음이 아팠다. 먼저 살아온 선배로서 어쩌다가 이렇게 힘든 입시의 길을 물려주었는지 괜스레 미안해졌다.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조금 더 즐거운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아이들이 휴가를 떠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멘티인 하율이와 윤이가 의도치 않게 방꾸쟁이들에게 꿈을 하나 만들어준 것이다.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크고 작은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나왔다. ‘과자집 만들기’, ‘놀이공원 가기’ 등등. 아마 이런 것들을 물어봐주는 어른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천진난만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은 시험 시간에 주어지는 1번 문제, 2번 문제, N번 문제라는 질문만을 던지고 있는 듯했다. 때로는 어른들이 차갑고 딱딱한 ‘문제’가 아니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작은 질문 하나가 때로는 아이들에게 꿈이 되고 희망이 된다. 별것 아닌 듯한 질문 하나가 아이들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길잡이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이 점을 대한민국의 어른들이 조금만 알아주었으면 한다. 아이들에게 답을 유도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주기를 바란다.
■ 다음 이야기(2025.02.16.일 업로드 예정)
□ Chapter1. 우당탕탕, 또시작? 또, 시작!
"타임캡슐 만들기, 과연 함께 열어볼 수 있을까?"
→ 하율이와 윤이와의 여름방학 마지막 멘토링, 앞으로의 만남을 기약하며 3개의 타임캡슐을 적었다. 1년 뒤, 3년 뒤, 5년 뒤에 열어볼 타임캡슐. 5년 뒤 아이들은 모두 대학에 다니고 있을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모습을 궁금해하며 타입캡슐을 쓰고, 잠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