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하루를 은행에서 보내다

기다려라, 그러면 하루가 갈 것이다

by 골목길


라오스, 아니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관공서와 은행업무를 봐야 할 일이 있다면,


되도록 하루 일정이나 중요한 약속은 잡지 않는다.


한국에서처럼 20-30분 내에 내가 원하는 업무를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특히,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차례를 기다려야 할 경우에는 몇 시간이 걸릴지 가늠하기 힘들다.


은행이나 관공서의 경우,

민원이나 업무처리 속도가 전산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은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소위 '전문인력, 업무의 숙련도' 차이라는 것을 경험해보고 조금만 관찰한다면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라오스에서는 관공서에 '민원'이라는 것이 있을까 싶다.

민원이나 정부 요청 사항이라면,

회사에서 요청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공문서를 보내고 그 공문서가 말단 직원부터 최고 담당자까지 올라가는데 3-4단계는 기본이며, 이 단계는 최소 3-4일이 걸리는 것은 기본이니 말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직원에게 물어보면,


어제 서류가 들어갔고, 이번 주 안에 해결해주기로 했어


라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이네들에게 이 정도의 시간은 당연한 것이고, 절차인 것이다.


사실, 3-4일이라는 소요시간은 라오스에서 엄청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고,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비자 발급을 허가받거나,

사업을 위한 사업자등록증 등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래 걸린다.


정말 절차를 위해 꼼꼼히 서류를 살펴보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대가를 원해 고의로 시일을 미루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 사실, 라오스에서 사업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중개인을 통해 사업 진행에 필요한 서류를 빠르게 진행하기도 하는데, 관련 관공서와 친분을 통해 업무처리를 빠르게 하기도 한다고 한다.




은행으로 가보면,


라오스에는 라오스 사람 90퍼센트 이상이 사용하는 BCEL이라는 은행이 있다.

수도 비엔티안 곳곳에 BCEL은행이 있지만, 관공서가 있는 중심가의 은행 2곳에는 거의 매일 사람이 많다.

그래서 기다리는 것이 일이다.


창구가 우리나라의 보통 은행에 비해 2배는 넘게 있는 것 같으면서도, 1시간을 앉아 있으면서 세어보니 확실히 손님 한 명의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는 오래 걸린다.

보통의 입출금이라면 시간이 덜 걸렸을지 모르겠다.

오늘은 신규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은행에 왔다.


작성해야 할 서류만 6-7페이지에, 가져와야 할 서류도 신분증, 증빙서류 등 3-4가지는 족히 넘는다.

어떤 곳에는 싸인을, 어떤 곳에는 손가락 도장을 시키는 대로 이리 찍고 저리 찍고 나니, 족히 2시간은 넘어버렸다.

자, 이제 개설하기 전 마지막 상담을 하는데, 상담원이 아무렇지 않게 평온하게 말한다.


이곳 지점에서 이미 한도의 계좌를 개설해서, 다른 지점으로 가서 만드셔야겠어요


*아마도 한 지점에서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수량이 정해져 있나 보다.

이미 이곳에서 오전 시간을 다 썼는데 말이다.


내가 화를 낼 수도 있겠다고 낌새를 챘는지, 이내 말을 이어가며


서류는 다 구비가 되셨으니, 바로 근처의 다른 지점으로 가셔서 개설하시면 됩니다. 문제없습니다.


이러면서 웃는다.


미치고 팔짝 뛰고, 화가 날 지경이지만 5분 뒤를 생각했다. 여기서 화를 내면 은행에서 나만 이상한 '한국인' 이 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다른 지점으로 이동해서도 다시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 시간 30분.


점심시간이 한참이 지나고서, 개좌 개설에 증명사진을 직접 찍어야 된다며 또 부르고 창구 앞에서 대기시킨다.

10여 분간 본인이 입력해야 할 서류를 컴퓨터에 입력하고선, '다 돼갑니다, 다 되었습니다.' 하고선,

나의 증명사진을 찍는다.


이리저리, 바쁘게 하루를 다 쓰면서도, 은행계좌 인출을 위한 체크북은 2-3일 뒤에 나온단다.


'허허, 이놈들아 아프리카도 여기보단 빨랐다.'

그래 나는 항상 속으로 라오스도 아프리카만큼 덜 개발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오늘 다시 나의 이론을 확인하였다.


느긋한 은행 안의 사람들.


그래도 장점이라면, 더운 라오스에서 에어컨은 빵빵하게 나왔다.

아무래도, '시원한 은행' 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다음에는 읽을 책이라도 가져와야겠다. 만약! 불가피하게 와야 한다면 말이다.


라오스에서의 오늘 하루, 정이 들어버린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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