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은 엄마의 육아 성적표가 아닙니다.
따뜻한 국물에 밥, 반찬까지 갖춰진 급식은 저에겐 ‘학교 점심’의 당연한 풍경이었죠.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자,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급식에 익숙해 있다가 갑자기 도시락을 챙기느라 무척 고생하신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 친구들이 각자 싸온 나물, 고기, 참치 등을 양푼에 넣고 비빔밥을 해먹던 추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한국인의 정서에는 사실 도시락은 단순한 한 끼 그 이상이었던것.
누군가의 정성이고, 나눔이고, 어떤 날은 부끄러움이기도 했던…
유난히 도시락에 관한 에피소드에 운동회때 싸가지 못한 김밥까지
우리나라 티뷔 드라마의 단골소재인 이유겠지요.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심지어 야자까지 하느라 점심, 저녁도시락까지 두개를 싸야 한다며
스트레스를 받아하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먹던 제가, 어느새 엄마가 되고,
또 교실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이 되면서
도시락이란 게 얼마나 현실적인 ‘일’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급식을 먹이시다가
국제학교로 뚝 떨어진 엄마들에게 말이죠.
많은 국제학교에는 학교 식당(canteen)이나 외부업체 딜리버리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피자, 파스타, 퀘사디아, 브리야니 등
아이들 입맛에 안 맞는 외국 메뉴가 대부분이라
도시락을 싸는 선택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학비도 만만치 않은데,
가격이 싸지 않은 급식까지 매번 사먹이기엔 부담이죠.
그래서인지 많은 부모님들이
도시락에 대해 고민도, 스트레스도 참 많으십니다.
하지만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제 입장에서
“잘 싸는 도시락”이란 정말 다르게 정의될 수 있습니다.
탄단지 균형 완벽하게 맞추고
예쁜 반찬 여러 가지 담느라 새벽부터 고생…
정말 안 하셔도 됩니다.
스낵은 과일 한 조각, 요거트, 작은 빵 하나면 충분합니다.
점심은 파스타, 볶음밥, 샌드위치 + 감자칩 등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단일메뉴로 ‘돌려막기’ 추천합니다.
한국사람에게 밥은 전부입니다.
특히 '엄마'라는 무게에서 오늘 중압감.
한끼여도 따뜻하게, 든든하게 챙겨주고 싶은 것.
하지만 현실에서 아이들 입장에서는 보온도시락에 싼 밥, 반찬, 국...
불편함과 번거로움 그 자체입니다.
또하나 기억하실것은
스낵·점심 시간은 아이들에겐 유일한 놀이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조용히 꺼내 먹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흘리기라도 하면 스트레스입니다.
영국식 국제학교에는 50분 수업, 10분 휴식과 같은
별도의 쉬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스낵과 점심시간은 곧 친구들과 수다떨며 ‘놀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소세지로 문어 만들고, 밥으로 동물 모양 만들고…
그 마음은 예쁘지만
아이들 눈엔 ‘빨리 먹고 놀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게다가 실제로 도시락이 열릴 땐…
눈알은 없어지고, 토끼 귀는 휘어지고,
호러 도시락이 될 확률도 높습니다.�
그 정성, 주 1회, 아니 월 1회 이벤트성으로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어머님 본인을 위한 시간을 보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가를 하던, 책을 읽던, 커피한잔을 마시던..
‘남기느니 많이 싸주자’는 마음, 엄마로서 너무나 이해됩니다.
하지만 오히려 아이에겐 ‘먹기 싫은 압박’이 될 수 있다는점을 기억해주세요.
차라리 살짝 부족하게 싸주고
“우와, 다 먹었네!” 하고 칭찬해주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게 자존감도, 자율성도 키우는 길입니다.
자기몫을 다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끼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점심시간을 매일 지켜보며 ‘엄마 마음과 아이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종종 목격합니다.
엄마는 정성껏 챙겨주고 싶은 마음으로
다양하게, 예쁘게, 풍성하게 도시락을 준비하지만
아이들은 빨리 먹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 게 전부일 때가 많습니다.
도시락은 예쁘지 않아도 괜찮고, 또 조금 모자라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가 부담 없이 꺼내 먹을 수 있는 한 끼라는 것.
그리고 그 도시락을 싸느라 고생한
당신의 아침을 너무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제가 교실에서 보고 느끼고 남편따라 외국으로 와서
아이들 라이드에 도시락에 매끼니 메뉴 고민에 지친 어머님들을 위한
간곡한 조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매일 노는 것처럼 보이고,
교과서도 없는 국제학교에서
“우리 아이 진도는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