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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ingual 아니고 Byelingual

1 + 1 은 이분의 1

by 아미

육아를 하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자주 간과하는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기는 것도, 걷는 것도, 말문을 트는 것도, 대소변을 가리는 것조차도 ‘배움’과 ‘훈련’의 결과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죠.

이중언어에 대한 환상도 그중 하나입니다.


해외에서 수영장과 천연잔디 운동장이 갖춰진 국제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걱정 반, 설렘 반입니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는 다른 교육을 우리 아이에게 제공한다는 뿌듯함, 그리고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힐 거라는 기대감도 슬며시 올라오죠.

‘이제 우리 아이도 영어로 친구 사귀고, 발표도 척척하겠지?’
주변에서는 “국제학교 다니면 영어 금방 늘더라”는 말도 들리고요.
실제로 초반에 울며 다니던 아이가 어느 순간 영어를 조금씩 알아듣고,
어라? 따로 가르친 적 없는데 영어로 대화를 하고, 나보다 더 잘 알아듣는 것 같기까지 합니다.
그 모습은 신기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하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기운이 감지됩니다.
아이의 한국어 어휘력이 점점 줄어드는 게 느껴져요.
말이 어설프고, 한국어를 쓰면서도 영어 단어를 자주 섞습니다.
그렇다고 영어가 아주 유창한 것도 아닌데… 황당하게도 한국어도 점점 어설퍼집니다.


“자동”은 없다


축구의 전설 차범근 선수의 아들이라고 해서 태어나자마자 슛을 잘 차는 건 아닐겁니다.
좋은 유전자, 좋은 환경은 분명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차두리 선수는 누구보다 치열한 훈련과 노력을 해왔을 겁니다.

우리는 결과만 보고 쉽게 말합니다.
“아빠가 차범근이니, 당연히 축구선수 됐겠지.”
과정은 보지 않은 채, 결과에만 열광하는 거죠.

이중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에서 중학교를 나와서, 일본에서 학교를 잠깐 다녀서 영어를, 일본어를 잘한다는 티뷔의 누군가를 보고, 좋겠다, 저런환경에서 자랐으니 당연하지 라고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국제학교라는 환경이 언어 습득에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결코 그 자체가 이중언어 실력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놀면서 배운다고요?


물론 언어는 놀이와 실생활 속에서 가장 잘 배워집니다.
특히 아이들은 성인보다 훨씬 유연하게 새로운 언어를 흡수하니까요.

하지만 “놀면서 저절로 배운다”는 말에 전적으로 기대는 건 위험합니다.
모든 아이가 언어에 흥미를 느끼는 건 아니며, 언어 습득 속도 역시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아이는 영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며 즐겁게 표현하지만,
어떤 아이는 두 언어 모두에서 혼란을 느끼고, 결국 언어 발달이 지연되기도 하죠.

그래서 부모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가 어떤 언어에 강점을 보이는지, 어떤 언어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살펴보고 조율해 주는 건 부모의 몫입니다.


주 언어의 선택


국제학교에서는 보통 영어가 학습의 주 언어가 됩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복잡한 개념을 설명하거나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한국어는 일상회화 수준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집에서 한국어 노출이 많다면 영어 표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두 언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 되려면
균형 잡힌 언어 자극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노력은 학교에서 영어만 듣는다고 충족되지는 않아요.


우리가 기대하는 ‘이중언어’란?


한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의 눈에는 이중언어자가 마치 자동 스위치를 켜듯
언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존재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의 시간, 노력, 심리적 혼란은 보이지 않아요.
우리는 그들의 여정은 모르고, 결과에만 감탄합니다.

국제학교를 졸업하면 유창한 이중언어자가 될 거란 기대는 사실 환상에 가깝습니다.
현실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만들어가는 언어 여정입니다.

그 여정이 때로는 길고 험할 수 있지만,

아이 스스로 세상을 두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함께 걷는 것.


'이중언어 육아' 는
국제학교 입학과 동시에 부모에게 주어지는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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