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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 작 Mar 06. 2021

손말이 고기를 먹으러 왔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났어

서울 종로에 <손말이 고기>를 먹으러 왔다가 네 생각이 났어.

음식이름이 낯설지만, 흔히 아는 고기말이랑  별 다를 건 없어. <할머니 뼈다귀 감자탕>이 할머니의 뼈를 희생하지 않았듯이, <손말이 고기>도 '손을 만 고기'는 아니란 거지.  얇고 넓게 편 소고기 우둔살로 작은 깻잎 한장과 몇개의 쪽파를 돌돌 만 것 뿐이야. 마치 네가 시내한복판에서도 자신있게 돌돌 말고 다니는 헤어롤처럼 말이야.

아마도 네가 빛깔 좋게 나오는 이 고기말이를  직접 봤다면, 헤어롤대신 머리에 달고 다니면서 하나씩 구워먹고 싶다고 말했꺼야.


고기속에 숨은 쪽파가 구워지면, 그 단맛이 고기와 어울리며 달큰한 간식을 먹는 기분이 몰려와.

충분히 달큰한 맛을 즐기고 나면 그 다음부턴 점점 덜 익혀가면서 먹어야 해.

살풋 익은 쪽파로 '알싸달콤'한 맛을 즐기다가, 이어서 불판이라는 체육관 매트에 낙법 두어번 시킨 것을 낼름 먹는 순서이지.

그리고는 달큰하게 굽는 순서로 다시 돌아온다면 '무~한 흡입!' 할 수가 있어.

그러니 남이 사 주는 거라면 반드시 이 굽기의 셀프코스요리를 지키고, 혹시 내가 쏘는 거라면 일일이 정성스럽게 끝까지 푹 구워주는 게 돈을 아끼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한점한술'이란 말 있지?고기 한 점에 술 한잔. 술을 잘 먹는 사람도 못 먹는 사람도 이 불판 앞에 앉으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홀린듯이 그렇게 먹고 있어. 한잔의 술을 위한 이 한 점의 한식 핑거푸드는 아무리 네 입이 작아도 베어먹을 수도 없고, 아무리 네 입이 커도 한꺼번에 두 점을 넣었다가는... 고기말이 대신 멍석말이를 당할꺼야...



고기말이를 다 먹고 나면, 이 오목한 그리들(요즘 주로 캠핑장에서 보게 되는 동그랗고 오목하고 두꺼운 철판을 그리들이라고 해. 뒤집은 솥뚜껑같은 거지) 가운데 소기름이 흥건히 남게 돼. 일단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 우린 저 기름을 몸속에 넣지 않고, 불판에 그대로 남겨놓았으니 얼마나 건강한 기분이야?


그래도 속이 조금은 느끼하다면 그 소기름이 남은 그리들 위에 시래기 된장찌개를 그대로 들이 부어서 끓일 수 있어. 강원도에서 시작한 식당답게 강원도에서 유명한 시래기와 막장을 쓴 된장찌개지. 거기에 밥과 두부를 함께 넣고 으깨서 '술밥'을 만드는거. 소고기조각 하나 들어가지 않은 된장찌개이지만, 쪽파향 가득한 소기름이 된장과 함께 지져지면서 고기조각 잔뜩 넣은 것보다 더 진한 고기육수의 된장찌개가 되어버리는거지.


그렇게 짜글짜글 끓인 찌개를 한 숟갈 입에 넣으면, 식도에 찰싹 붙었던 소기름이 막장을 머금은 시래기에 모두 쓸려 내려가.

그 소기름은 된장과 손을 잡고 뱃속의 망망대해로 사라져버려서 우리는 살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지.

맛있는 걸 먹으니 이렇게 너와 함께 오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드네.

맛있는 걸 먹으면 늘 주머니가 넉넉한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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