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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 작 Mar 06. 2021

멸치쌈밥을 먹으면 난 고래가 되는 꿈을 꿔

남해에서 멸치쌈밥을 먹다가 네 생각이 났어.

어릴적부터 꿔오던 꿈을 이뤘거든.


난 늘 고래가 되고 싶었어.

넓은 바다 수면위에 큰 입을 쩌억 벌리고 있으, 소용돌이 치는 멸치떼가 그 목구멍속으로 워터슬라드 타듯이 유후~외치며 뛰어들테지. 그럼 매운 와사비를 먹은 것처럼 콧김을 흥! 세차게 한번 뿜고는 저 먼 바다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그런 고래 말이야.


보들보들하고 혹은 잔가시땜에 까끌거리기도 하는 잘 조려진 멸치떼.

 멸치조림을 드넓은 상추위에 잔뜩 올려 목구멍에 밀어넣고 나면, 나도 드디어 고래가 돼.

그러면 파란 저 끝 어딘가 너를 찾아 하얀 꼬리를 세워 길을 떠나는 거지

도시에서 먹었다면 고래로 변했을 때 낭패 아니겠어?

하지만, 여기 남해는 바로 눈 앞이 바다란 말이야

멸치를 한 움큼 삼키고 고래가 되면 바로 바다에 뛰어들 수 있거든.


하지만, 명색이 바다의 큰 고래인데 익힌 멸치를 입안에 밀어넣고 만족한다는게 자존심 상하더군. 싱싱한 날 것을 먹는 거친 풍랑속의 고래가 되기 위해 '멸치회무침'을 주문했어.

그 한 접시를 받자마자, 음식을 만드신 식당 어머님께 미안한 마음이 밀려들었지.

 주름진 손으로 그 작은 멸치 한마리 한마리의내장과 뼈와 머리를 일일이 떼내고 손질해 만들어 낸 한 접시가 어떻게 커다란 연어 한 마리의 살덩어리를  담아낸 한 접시랑 비교될 수 있겠어.


이건 마치 멸치들이 바다위에 떠 있는 접시 위에 올라와서, 외투를  벗듯 살만 살포시 벗어놓고 머리와 뼈와 내장만 붙은 채로 물속으로 뛰어든 느낌이잖아.

   

 

어머니의 그 노동에 마음은 안쓰럽지만, 내 입은 부지런했지.

젓가락 한 웅큼 멸치회무침을 입에 집어넣고나자, 곧바로 입에서 뇌를 거치지 않은 외침이 튀어나오는거야.


"어머니! 막걸리 한 병요!!"


남해엔 많은 멸치쌈밥집이 있지만, 다 같은 맛이 아니란 건 당연한 얘기지.

회무침의 양념은 무엇으로 단맛을 냈는지, 무엇으로 신맛을 내는지, 그 단맛과 신맛의 미세한 비율이 어떤지에  따라서 맛의 계급이 나뉘는 거잖아?

멸치를 손질할 때 덥석덥석 잡아서 짓물러졌는지, 빠르지만 세심하게 손질해서 모양이 살아있는지까지도 차이가 나겠지.

회에 맨손을 대야만 하는 일식셰프들은 손의 체온으로 인해 회가 조금이라도 익을까봐 얼음물에 수시로 손을 담그는 것 알지?

어쩌면 이 맛있는 회무침을 만드신 어머니는 태생적으로 수족냉증이 있으셔서, 최상의 멸치회를 내놓는 걸지도 몰라.

  

어머니의 손맛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식탁위에 이런 김치가 올라왔지.

바로 '볼락'을 함께 넣어 담근 김치야.

우리나라의 아랫지방에서는 김치를 담글 때, 큰 생선을 통째로 넣기도 하거든. 큰 조기 혹은 전어같은 것도 자르지 않은 채 넣기도 해.

그러니 썰어놓은 김치와 같은 크기의 이 작고 앙증맞은 볼락은 커다란 밥 한 숟갈에 그대로 올려질 '양념스시' 쯤 되려나?

이 한입이 입에 들어가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동안, 입안에 침이 정말 홍수처럼 터져나왔어. 마지막 침이 넘어가기 전에 어머님께 볼락김치를 좀 더 구걸했지만...

 

"이게 마지막 볼락김치라예. 더 없심더. 담가서 익을라믄 또 한참 있어야 돼예."

 

아쉽다. 너랑 언젠가 다시 온다해도 이 김치를 못 먹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난 가까스로 먹을 수 있어서 운이 좋다!란 생각. 그리고 이 마지막 볼락김치를 먹은게 내 로또운과 바꾼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포슬포슬하게 익힌 멸치를 먹고, 멸치들이 벗어두고 간 생살회를 먹고, 그 멸치그물에 우연히 같이 잡혀 김치속이 되어버린 볼락까지 먹고 보니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어.  


내 뱃속에 들어간 멸치떼는 잘 헤엄쳐 다니고 있을까?

내 뱃속에서는 그들도 고래떼가 되는 꿈을 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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