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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 작 Mar 12. 2021

내가 한치물회를 먹은 건지 수제맥주를 먹은건지.

서귀포에서 생한치물회를 먹다가 맥주를 좋아하는 네 생각이 났어


생한치물회는 마치 목넘김이 기가막힌 맥주를 마시는 기분이거든.


질긴 오징어물회는 감히 따라올 수 없는 부드러움

해동된 한치도 따라올 수 없는 폭신함이

목젓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내려가는 그 감촉!

한 숟갈씩 떠먹을 때마다 '짠!'하고 숟갈을 부딪히고 싶을 정도야.


게다가 제주도의 물회는 톡쏘는 고추장이 아닌 부드러운  된장이 베이스거든.

섬에서는 옛날에 고추가 잘 나지 않아서, 육지에서는 고추장 넣을 음식도 여기선 된장을 쓰는 경우가 많아

혹여나 제주여행에서 먹은 물회가 많이 빨갛다면 사장님의 초장인심이 후해서가 아니야.

그건 대도시를 벗어나고싶어 여행을 왔지만, 여전히 익숙한 '서울맛'이 아니면

퉤 뱉어내는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네 혀'에 맞춰준 음식일 뿐이야

된장으로 밋밋하고 희끄무레한 색깔의 물회가 나오면, 거기가 바로 현지의 맛인거지.


그런데 톡 쏘는 짜릿함 없이 부드럽기만 하다면 맥주같다고 할 수 없지.

그래. 빙초산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으니 콸콸 부어 맘껏 식도를 쏘아댈 수 있어

사과식초 현미식초따위 빙초산 앞에서는 김빠진 맥주나 다를 바 없지.

마음껏 먹고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든다면, 단지 기분탓만은 아닐꺼야

식당 다음 여행코스는 병원응급실이 되겠지


 제주의 물회맛을 결정짓는 마지막 한 가지가 있어.

유니크한 향의 수제맥주를 만들어주는 마지막 한 끗.

그건 바로 '산초잎'이야.

산초 혹은 제피라고 하는 것들은 매운탕 추어탕같이 비린맛을 잡아주는 재료로 쓰이지


상상해봐.

울렁이는 어선위에서 고기잡이에 지친 어부들이 끼니를 때워.

갓잡은 한치를 썰고, 된장을 풀고, 차가운 물을 섞은 그 위에 뜨거운 밥을 푹 말아

그런데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의 돛 위에 어느 육지의 산새가 느닷없이 내려앉는 거야.

비린 바다위에 풀냄새 흙냄새 가득 묻힌 산새가 말이야

그게 바로 물회 위에 마지막으로 올리는 산초잎인거지


 이렇게 물회 한그릇을 마주하니 , 오늘따라 더 없이 너와 '짠!'을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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