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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 작 Apr 09. 2021

순두부 한 그릇으로 받는 응급치료

관광객과 현지인이 가는 식당의 차이는 뭘까?

관광객맛집이란 건 좀 비싸도 특별한 재료, 특별한 음식 차림새, 특별한 가게 비주얼 등등?

제주도 현지인 맛집을 내게 묻는 친구들이 있어.


"제주도 현지인 맛집 좀 추천해 줘." 

"그래? 순두부 식당이 있는데, 거기가 말이야..."

"hey men!순두부집은 우리 동네에도 300개 있거든! 제주도까지 가서 순두부 먹는건, 뉴욕가서 롯데리아 먹는 거랑 같은 짓! 흑돼지나 횟집 뭐 그런걸 불라고!"

"어이어이! 나한테 흑돼지 캐비어와 동급이야. 패리스힐튼이나 먹는 초고가 요리은 거라고! 그 비싼 걸 현지인이 자주 먹을 거 같냐? 육지에서 관광 온 니들이 쏘면, 그때 빌붙어서 얻어먹는 음식이 바로 현지인의 흑돼지다 이 녀석들아!"


흑돼지처럼 특별한 재료를 원하는 사람들을 난 여행객이 아니라 관광객이라 부르고 싶어.

관광은 '본다'는 의미가 강하고, 여행은 '그 속으로 들어가서 다닌다'는 의미가 강하잖아.

진짜 제주에서 여행을 하고 싶고 그 맛을 느끼고 싶은, 바로 너같은 여행자에게 추천할 곳이 바로 돈내코계곡 인근에 숨어있는 순두부집이야.


제주는 옛날부터 콩재배가 많았으니, 당연히 두부도 많이 만들어 왔. 맛있는 두부의 필수조건이 바로 '좋은 물'인데, 어느 집이고 수도꼭지를 틀면 '삼다수 생수'가 나오 절반의 맛은 이미 보장이 됐지?

그리고  따로 팔 정도로 자부심있는 말린 표고버섯과 멸치로 우려낸 육수가 정말 진하고도 맑아. 원래 육수를 우릴 땐 생표고보다 말린 표고가 더 향이 진하게 돋아나는데, 그 표고의 향이 다른 순두부집보다 도드라져.

그 진하고 맑은 국물을 먹다보면, 우리집 욕조에  육수를 들이붓고 몸을 담그고 싶은 욕망이 솟아올라. 살갗이 뜨거워서 좋은지, 속이 시원해서 좋은지, 몸을 담가서 좋은지, 담근 그 물을 마셔서 좋은지, 그저  "어~허~ 좋다!"란 탄성을 지르고 싶단 말이지.

 

이 순두부국만으로도 맛에 대한 허기를 채우는데 충분하지만, 선물같이 나오는 기본접시가 하나 있어. 그게 바로 기본으로 나오는 수육이야!


종종 먹고있다 보면, 처음오는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 이런 질문 하는 걸 여러번 봤어.


"저기...수육 더 먹고 싶은데, 안 파세요?"

"네..."

"돈 따로 드릴테니까..."

"아유 어쩌나. 순두부랑 같이 나가는 양이 맞춰져 있어서..."


제주는 전통적으로 '가문잔치'(결혼식 전날 하는 피로연)에 '괴기반'을 내놓았어.  

돼지고기 석점과 수애(순대) 한 점, 둠비(두부) 한 점이 담긴 접시지. 지위높은 어른이 와도 무조건 1인 1괴기반이 국룰!...이지만 그래도 최상위클래스가 오시면 그 접시의 고기 한점 크기는 손바닥만하지 않았을까?

여튼, 어쩌면 그런 이유로 이 식당 역시 순대 김치로 바뀐 이 괴기반을 한 접시 이상 내놓지 않는 걸지도 몰라.

매일 아침 직접 만드는 손두부, 그냥 생김치처럼 보이지만 수육에 절묘하게 어울리도록 익은 김치, 그리고 우유에다 삶았나?싶게 고소하고 뽀~얀 맛이 나는 수육. 가히 여기 진짜 수육맛집이야!



마지막으로, 너처럼 진짜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왜 이 곳을 들르라고 하는지 '방문 팁'으로 알려줄께.


가장 적절한 방문시간은 오전 10시 50분. 11시 오픈이지만 들어가도 뭐라하지 않을,  손님이 없는 한적한 때.

가장 적절한 식탁위치는 한라산의 능선과 하늘이 길게 이어져 보이는 창문가.

가장 적절한 마음상태는 지치고 힘들 때. 다 싫고, 누구로부터 아무 조언도 듣고 싶지 않을 때. 그래서 그 누구도 나를 위로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그 시간, 그 자리, 그 전경, 그리고 맑은 순두부 한 그릇이 지친 너를 다독여 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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