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이 음식에 대한 감탄인지, 아니면 컴플레인을 걸고 공짜백숙을 얻어먹으려는 진상인지를 판단하지 못한 사장님은 잠시 머릿속에 로딩이 걸린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지.
하지만 질문을 한 나도 혀에 로딩이 걸리긴 마찬가지였어
도대체... 이 고급진 북유럽 7성급 호텔 스프같은 풍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정답! 육수를 따로 뽑아 쓰시는구나!"
"그냥 맹물 쓰는데?
"에?...그럼 대체 왜 이런 맛이..."
"아...엄나무를 넣어서 그럴꺼예요."
사장님이 냄비안에 든 엄나무 조각을 가리켰다. 하지만 아니야... 누가 엄나무 넣은 닭백숙을 안 먹어봤을 줄 알고?엄나무 회초리로 종아리까지 맞아본 사람으로서 단언하건데, 엄나무는 거들뿐!
궁금함을 못참고 검은 오골계 괴물고기와 유일하게 든 다른 건더기인 감자, 그리고 그 괴물의 진액을 계속 들이켰어.
그리고 어느순간! 난 사장님도 모르는 3가지의 정답을 발견한 것 같았어. 그건 사장님조차도 너무 익숙해서 모르고 있었던 거야.
첫째는 바로 사장님이 늘 먹어서 그 가치를 잘 모르는 강원도 감자. 그 감자에서 나오는 은은하고 크리미한 특유의 향이 마치 유럽 시골할머니가 감기 걸리면 해줄듯한 '생크림 감자스프'맛을 떠올리게 한 거야.
둘째는 '잘 손질한 줄 모르고 잘 손질한' 활닭손질 스킬! 기름과 잡스런 부위를 무심한 듯 디테일하게 제거한 칼질! 살을 저미는 미묘한 칼의 각도가 180도 다른 맛을 구현해 낸 거지.
세번째 답은 흐물흐물하고 질겅질겅해서 평소라면 절대 먹지 않는 백숙의 닭껍질을 먹어 보고는 깨달았어. 이것만은 차이가 없으리라 확신했건만... 오호라! 이 식감은...눈을 감고 먹으면 짬뽕에 들어간 목이버섯과 절대 구분할 수 없을거야!
이게 무슨 뜻이냐!? 오골계라지만 사장님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닭의 품종! '오계'니 '오골계'니 '백봉오골계'니 많은 말들이 있지만, 그게 어느 시대에 어느 닭과 바람이 나서 어떤 유전자로 전해져 내려왔는지 완벽하게 알 수 없거든. 그러니 사장님의 가게에 공수되는 오골계가 너무나 운 좋게도 목이버섯 껍질을 덮어쓰고 살도록 진화한 닭인거야!
서양에서 소고기스테이크를 먹는 문화에 왜 소스가 많이 발달한 줄 알아? 걔들은 지방없는 살코기부위만을 선호하잖아. 먹다보니 퍽퍽하고, 퍽퍽하니 그걸 소스로 보충하는거지.
양념을 잔뜩 버무린 고기도 맛있지만, 그럼 적어도 그 고기자체의 수준을 자랑하지 말아야돼.
고가의 최고급 생선은 결코 회무침으로 쓰지 않듯이.쓰리뿔 소고기부위가 결코 불고기양념이 1순위가 아니듯이.
닭백숙에 한약재를 잔뜩 집어넣은 걸 자랑한다면, 난 닭 자체에 자신이 없다는 걸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 생각이 이곳의 닭백숙을 먹어본 후에는 '개인적인 의견'에서 '객관적 사실'이 되고 말았어.
너도 <영혼에 충격을 주기 위한 닭고기 스프>를 먹고싶다면, 강원도 양구에서 나를 불러. 정말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오골계 괴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