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과거의 허무는 글과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선선하다는 단어는 두 가지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원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서늘하다는 것과, 성질이나 태도가 까다롭지 않고 주저함이 없다는 뜻.
여름엔 좀 유독 예민해진다는 감각을 느끼는데, 날씨가 선선해지면 마음도 같이 선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그게 진짜 마음도 선선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게끔 해두었구나.
마음이 선선해졌다.
살아갈수록 맺고 끊어내는 것에 조금은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미련이 늘어간다. 털어내는 것이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었나. 이별에 대한 감각은 왜 날이 갈수록 무뎌지는 것이 아닌 선명해지는 것일까. 이별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실은 이별한 것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왜 자꾸만 이별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지는 걸까. 앞으로 이별할 것들이 많아서일까. 현실은 결코 아름답거나 낭만적이지 않다. 이별에 대한 이미지엔 분명 성장하는 내가, 그럼에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결말 같은 것이 있지만 실은 허상임을 안다. 하지만 끝끝내 비현실 낭만을 추구하고, 구질하게 이별 속에 숨어진 의미를 찾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못 버틸 것 같아서. 시와 글, 그리고 그림을 악착같이 곁에 두고 붙잡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거라도 없으면 삶을 견디는 의미가 없다. 버티고 남아 재가 된 것들을 미련하게 모아서 쓰고 그려야 한다. 이유는 없다. 그저 해야 하기에 하는 것이다. 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실종된 과거의 허무는 글과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라도 하고 나면, 완벽히 나아지진 않더라도 조금은 괜찮아진다.
여름이 끝이 난다. 잠시 여름과 이별할 때가 되었다. 나는 또 구질구질하게 여름엔 성격이 포악해지는 이유를 찾고, 붙이고, 찢어내며 그래도 아쉬워하고 또 보내주기 위한 채비를 하겠지. 그리고 선선한 계절에도 왜 성질은 선선하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도 찾을 것이다. 정말이지, 가끔은 내가 쓰지 못하고 그리지 못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진다. 분명 거창하지 않은 글과 그림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또 쓰고 그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