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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Aug 30. 2023

시끌벅적하고, 군침 돌며, 저절로 눈이 감기는.

축제(お祭り)의 먹을 것들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벗어도 벗어도 더운 걸 어찌할 수가 없어서. 일본의 여름은 습해서 더 그렇다. 온몸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라도 휘감고 있는 것 같은 습기는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섬나라'라서 그렇다고 한다. 신기한 것이 이놈의 섬나라는 가끔 대륙인가 싶을 만큼 크다. 섬 중간에서 아래쪽 끝까지 가는데 비행기로 2시간이 걸린다. 도쿄 근방에서 한국까지 가는데 2시간이 걸리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이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의 크기이다. 이 큰 나라가 여름이 되면 온통 들썩들썩 흥에 젖는다.


여름휴가를 기념하여 교토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의 시내를 돌아다니던 중 축제 이야기를 들었다. 


기온마츠리(祇園祭).


알고 보니 일본 3대 축제 중 하나였다. 며칠에 걸려 진행되는 축제의 메인은 시내를 도는 커다란 탈 것들의 행진이었다. 빨간색과 금색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한 탈 것들은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창과 나무 같은 것들이 높다란 지붕 위로 보였다. 사방을 울리는 북소리와 맑고 높은 피리 소리가 흥을 돋우며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엄청나게 큰 이것들은 많은 사람들이 구령에 맞춰 끄는 힘에 움직인다. 그들이 잡고 있는 밧줄이 시작되는 곳에 부채를 들고 지휘하는 사람이 서 있다. 응원단처럼 절도 있는 동작으로 구령을 맞추는 모습이 얼마나 멋있던지. 





사방에 늘어선 야타이(屋台)라 불리는 포장마차 같은 것에서 파는 음식들은 또 어떤가. 노릇노릇 잘 구워 간장 소스를 발라 놓은 옥수수, 팔랑팔랑 가쓰오부시가 춤을 추는 타코야끼(たこ焼き), 반짝반짝 윤이 나는 빨간 링고아메(リンゴ飴), 톡 쏘는 간장소스가 일품인 야끼소바(焼きそば), 뱃속까지 서늘하게 해 줄 빙수인 카키고오리(かき氷) 도 빼먹을 수 없다. 

 

우연히 본 축제로 단번에 여름이라는 계절이 좋아졌다. 왁자지껄한 소리와 절로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냄새들. 이 모든 것이 있는 여름.


생각해 보니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된 때에 나는 이미 일본의 축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 아직 출근길이 여행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주말이면 편도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에 있는 곳으로 일본어를 배우러 다녔다.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선생님과 신문을 읽었다. 웃어른 앞이라는 사실과 남의 집이라는 이유로 긴장해서 물도 제대로 마실 수가 없어 입은 바짝바짝 말랐다. 침을 삼키는데 목구멍이 달라붙을 것 같아 눈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하려고 손을 뻗었다. 어디서 둥둥 대는 소리와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시끌시끌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벨이 울렸다.


"잠깐만 기다려. 지금 축제 중이거든"


선생님이 나가시는 것을 보고 '앗싸.'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얼른 커피를 홀짝였다. 현관 쪽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몇 마디 주고받는 소리가 나더니 선생님이 돌아오셨다. 아이들이 짊어진 오미코시(御神輿)가 돌아서 축의금 같은 것을 전하셨다고 했다. 오미코시라는 것은 신사에서 모시는 신을 넣은 가마이다. 축제 때가 되면 화려하게 꾸민 오미코시를 신사에서 들고 나와 행진을 한다. 선생님은 야타이 이야기를 해주셨다. 집으로 가는 길에 들러보라는 말씀도 함께. 


집에 가는 길은 왁자지껄했다. 선생님댁에 갈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이 보였다.  '축제(祭)'라고 적힌 옷을 걸친 사람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먹을 것을 들고 있는 사람들. 바나나에 쵸코를 바른 쵸코바나나 같은 것들이 곁눈으로 스쳐 지나갔다. 코를 연신 킁킁댔다. 신이 난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며 '먹어볼까' 생각만 하는 사이에 야타이를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하나 달라고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야타이에서 파는 음식이 다 거기서 거기지.' 스스로를 위로하기 바빴다. 


회사를 다니며 전철을 타고 지나다니다 보니 여름이면 곳곳에서 축제를 열었다. 초-칭(提灯)이라 불리는 연등같이 생긴 것이 어두운 밤을 훤하게 밝힌다. 피리 소리와 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야타이에서 풍기는 냄새를 떠올리게 해서 저절로 입에 군침이 돌았다. 늘 지켜보기만 했다. 회사를 옮기고 생각한 것을 막힘없이 일본어로 말할 수 있게 되고서야 축제의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었다.


교토에서 본 기온마츠리가 그 시작이었다. 늘 보며 군침만 흘리던 구운 옥수수를 샀다. 찐 옥수수를 막대기에 꽂아 간장 소스를 발라 노릇노릇 구워낸 그것은 달큼하고 짭짤했다. 입에 소스와 국물이 범벅이 되는 것도, 이빨에 옥수수 껍데기가 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게 하는 마법 같은 맛이었다. 타코야끼를 입안 가득 넣고 뜨거워서 어쩔 줄을 모르며 혓바닥을 놀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연신 입 안을 식혀보겠다고 하 하 숨을 내뱉으며 웃음이 나왔다. 음식점에서 사 먹는 것보다 몇 배는 맛있었다. 겨우 '이거 주세요' 한마디에 원하는 음식들이 손에 쥐어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부터는 축제 음식이 죄다 아이들 몫이 되었다. 아이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을 사준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고를 여유가 없다. 아이들은 꼭 링고아메 같은 것을 먹는다. 작은 사과에 빨간색의 꾸덕진 시럽을 발라 말린 음식이다. 사탕처럼 달콤해서 쫄쫄 빨아먹고 깨물어 먹다 보면 사과가 나오는 식이다. 그런데 이 사과. 맛이 없단다. 나는 먹어본 적이 없지만 아이들은 꼭 사탕 시럽만 빨아먹다 말거나. 가지고 놀다가 막대기에 꽂혀 있던 사탕을 떨군다. 틈틈이 눈에 보이는 것을 사다가 아이들 입에, 내 입에 넣는 것도 좋다. 아이들 입에, 옷에, 손에 쳐 발린 시럽과 소스들을 닦으며 남은 것을 겨우 먹어도 혼자 먹을 때 보다 맛있다. 입을 오물대며 눈을 꼭 감고 흥겨운 소리와 냄새에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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