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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Sep 18. 2023

퉁 퉁 튕겨대던 그때 그 소바

신슈소바(信州そば)

"소바 주세요"


소바가 좋다. 속이 더부룩 한 날. 입맛이 없는 날. 츄룹츄룹 짭짤한 쯔유에 찍어 먹는 소바를 떠올린다. 와사비를 면발에 살짝 얹어 먹으면 코가 찡- 하고 울린다. 참아 보겠다고 숨을 참고 미간에 주름을 만드는 그 순

간조차 맛있다. 마지막에 남은 쯔유에 소바유(そば湯)라 불리는 소바 삶은 물을 넣어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다. 일본에 와서 되지 않는 말을 더듬대던 때.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한국으로 쫓겨나지 않으려고 하루하루가 서바이벌 같았던 때에는 소바와 우동 중에 고르라면 우동을 골랐다. 언어와 일 이외에는 익숙했던 것만 하던 시절이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려움과 떨림을 안고 한 발 내디뎌야 하고, 멈추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잘 되든 그렇지 않든 하다 보면 낯선 것이 당연한 것이 될 때가 있다.


나에겐 일본어가 그랬다. 외국어는 어릴 때부터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존재였다. 영어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6년이나 배웠지만 머리에 남는 것은 한 줌의 단어들 뿐이었다. 일본어는 대학에 가서 교양수업으로 점수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접했다.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교과서, 일본인과 결혼해서 일본어만 썼더니 한국말이 서툴러졌다는 한국인 강사. 이런 것들은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재미있겠다는 마음은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고 글자를 배우면서 꾸깃꾸깃 구겨졌다. 매번 한숨이 나왔다.


동그란 그림 같은 히라가나. 비슷하게 생긴데 발음은 왜 다른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쓰는 과제를 할 때면 곡선이 가득한 글자를 쓰느라 힘을 너무 줘서 손가락에 쥐가 날 것 같았다. 


"다신 내가 일본어 하나 봐라."


쓰지도 않을걸 뭐 하러 배우나 싶어 일본어가 어렵다는 탓을 하며 글자만 따라 쓰다 때려치웠다. 그런 내가 일본으로 가게 될 줄이야. 콕 찝어 일본에서 일할 생각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 언어의 어순이 같고 한자권에 속한다는 것. 


너무 쉽게 생각했다. 동그라미면 동그라미. 각은 확실하게. 필요할 때는 일직선으로 쭉쭉 뻗은 한글과는 차원이 달랐다. 둥글다가도 각이 졌고 직선이다가 둥그렇게 곡선을 그리며 뻗치기도 했다. 비슷한 글자는 또 왜 이리 많은 것 같은지. 이게 저거 같고 저게 이거 같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간다고 큰소리 땅땅 쳐 놓고 언어가 어려워서라는 핑계를 댈 수가 없었다. 열심히 해야지 별 수 있나. 그림 그린다 생각하며 비슷하게 그리고 말하고. 하다 보니 익숙해지긴 하더라. 처음엔 그림으로 보이던 것이 글자로 보이고 말하는 데로 받아 적는 것도 가능해졌다. 1에서 10까지의 숫자를 거꾸로 세면서 애를 먹었는데 어느새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 천천히 들리기 시작하고 말이 나왔다.


나의 일본 생활도 그랬다. 시작은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뭘 해도 어색했다. 누가 물어보면 잘 알아듣지 못하고 아는 말만 하고 입을 다물기도 했다. 같은 말도 사람이 바뀌면 못 알아듣고 그저 미소 지었다. 설마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싶어서. 타는 곳이 10군데도 넘는 커다란 역에서 전철을 잘못 갈아탈까 봐 얼마나 긴장했는지.


주말이면 일본어를 배우러 다녔다. 사람 많은 관광지에 찾아가 아무나 붙잡고 말도 걸었다. 뉴스를 보면 좋다고 하길래 집에 있을 때는 내내 티브이를 틀어놓았다. 공부한다고 자막을 없애고 일본 애니메이션, 드라마도 계속 돌려 봤다. 같은 걸 또 봐도 못 알아들을 때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도 자꾸 보니 질리더라.


이어폰을 끼고 여느 때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때였다. 하- 하고 입김을 불어내면 허연 김이 올라와서 이불 속에 들어가 있었다. 보다 보니 말이 다 이해가 가는데 자막을 켜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어 머릿속에 물음표, 그다음엔 느낌표가 수 없이 찍혔다. 이어폰을 내 던졌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소리 질렀다.


"예이!"


혼자 좋아서 방방 뛰었던가. 그 무렵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카루이자와에 놀러 갔다. 일본 최고의 휴양지. 천황도 놀러 간다는 그곳.


"여기 맛있는 소바집 있어. 신슈소바(信州そば) 먹어봤어?"


 같이 간 사람은 소바를 사준다며 나를 가게로 데리고 갔다. 전에 누가 그랬었다. 일본에 익숙한 사람은 우동보다 소바를 좋아한다고. 그 말에 빨리 적응하고 싶었던 나는 우동과 소바를 골라야 할 때 가끔 소바를 먹었다. 식당에 가서 소바를 달라고 하면 날 외국인으로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쫄깃하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맛의 소바는 내 입에 맞지 않았다. 배가 차는 것 같지도 않고. 무조건 맛있다고 말하리라 다짐했다. 


"신슈소바(信州そば) 요."


지인이 익숙하게 주문하는 동안 주변을 살폈다. 테이블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즐거워 보이는 표정으로 앞에 놓인 그릇을 마주하고 있었다. 저렇게나 맛있나 싶었다.


지인은 많이 와 본 곳인지 익숙하게 주문을 했다. 먼저 내온 따뜻한 소바 차를 마시고 있으려니 소바가 나왔다. 네모진 상자같이 생긴 그릇 위에 김발 같은 발이 얹혀 있고 그 위에 소바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물기가 어려 반들거렸는데 불빛 때문인지 회색인지 흰색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얼른 그릇에 옮겨 한 젓가락 입에 물었다. 지인은 이곳 소바가 쥬-와리 소바(十割蕎麦 : 소바가루 100%로 만든 소바) 라며 자랑을 해댔다. 





그래. 나도 잘 적응한 현지인이니까. 젓가락으로 몇 가닥 집어 소바쯔유에 푹 찍었다. 입에 넣은 면발들은 씹을 때마다 뚝뚝 끊어졌다. 뽀득뽀득하는 소리가 들리는 건 착각인가. 잠시 내 입안에서 잘게 잘리고 있는 것이 고무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냄새가 나지 않는 고무줄. 내려다본 쯔유 속에는 소바 면발만 잠겨 있었다. 딱딱한 소바가 뚝뚝 끊겨 입 안을 튕겨 다니는 느낌이 먹는 내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당황스러웠지만 맛있다는 듯 후루룩 소리까지 내 가며 (사실은) 꾸역꾸역 다 먹었다.


그때부터였다. 우동집에 가서도 소바를 달라고 하기 시작한 것은. 이상하게 뻣뻣하고 툭툭 끊기는 그 맛이 자꾸 당겼다. 뭉개지지 않고 입 안을 굴러다니는 소바들을 꿀꺽 삼키고 났을 때의 시원한 느낌이 좋아졌다. 그동안 나는 끊임없이 말하고 열심히 제 몫의 일을 해냈다. 여행 중인 듯한 느낌은 어느새 사라지고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주니까 맛도 모르고 마시던 소바유를, 이제는 없으면 찾아서 달라고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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