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Sep 01. 2022

눈물 나게 맛있었던 봄의 맛

사쿠라에비튀김(桜海老のかき揚げ)

살을 때리는 것 같은 바람이 볼을 어루만진다 싶으면 앙상했던 나뭇가지에서 몽글몽글 맺혀 있던 이파리들이 기지개를 켠다. 하얀 팝콘 같은 매실 꽃을 보고 벚꽃과 구분도 할 줄 몰라서 '벌써 벚꽃이 피었나?' 하며 들여다볼 무렵엔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하루이치방(春一番)' 이라 불리는 남쪽에서 부는 강한 바람이다. 


이때에 길가를 다니다 보면 식당마다 '사쿠라에비(桜海老)' 가 들어갔다는 음식 사진이 들어간 깃발을 내놓고 있어서 '펄럭펄럭' 시끄럽다. 귓가를 때리는 펄럭이는 소리와 콧 속을 후려치는 바람을 타고 온 고소한 향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탓에 늘 뒤돌아보곤 했다. 어쩜 이리 때마다 내놓을 음식재료들이 널렸는지 한국에서 늘 먹던 것만 찾아 먹었던지라 같은 재료들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들을 볼 때마다 참 신기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벚꽃이 분홍빛 눈송이처럼 떨어지던 날. 


앞만 보며 사람들로 붐비는 길을 요리조리 헤쳐가느라 길가에 꽃이 피었는지 어떤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어깨 근처까지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때문에 자꾸만 뜨거워지는 뒷목에 손을 쑤셔 넣어 바람을 쐰다고 들춰대며 종종걸음을 하기 바빴다. 조금 앞쪽에서는 어깨가 아주 살짝 구부정하고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의 일본어 선생님이 휘적휘적 걸어가고 계셨다. 


일을 한답시고 일본으로 왔지만 말하기, 듣기 모두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수준이었던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일본어를 가르쳐주신다는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70년대부터 한국을 오가시던, 어쩌면 나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시는 분이셨다. 늘 외국에서 살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알아야 한다며 일본의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여기저기 데리고 다녀주셨다. 그날은 수업이 끝나고 '텐동(天丼)'이라 불리는 튀김 덮밥을 사주신다며 함께 나섰다. 집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선생님 댁까지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라 점심시간 무렵부터 하는 수업에 맞춰가려면 밥은 건너뛰기 십상이다. 책을 읽으며 뱃속에서 나는 천둥소리를 가리려고 목소리가 커지기 일쑤라 밥을 사주시는 날은 신이 났다.


한동안 걸어 도착한 곳은 튀김을 얹은 밥인 텐동을 파는 가게였다. 역시나 가게 앞에서 휘날리는 깃발에는 벚꽃새우튀김이 먹음직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유심히 살피는 나에게 선생님은 지금이 벚꽃 새우가 제철이라며 시켜 먹어보라고 하셨다. 가게에서 간판으로 내놓는 메뉴이니 얼마나 맛있겠냐 싶어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뱃속을 잠재워보고자 앞에 있는 물을 계속 마셔댔다.


밥은 금세 나왔다. 먹음직스럽게 튀겨진 커다란 야채들 뒤로 분홍빛을 띤 새우들을 동그랗게 모아 튀긴 '카키아게(かき揚げ)'가 보였다. 달달하면서 짭조름한 소스의 냄새가 폴폴 올라오는 하얀 김에 섞여 콧 속으로 들어와 온 몸에 퍼졌다. 선생님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마주하며 제일 먼저 벚꽃새우튀김을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가지, 새우, 연근, 인겐마메라 불리는 콩 그리고 벚꽃새우튀김



'와삭' 하는 소리와 함께 입속으로 들어온 새우와 얇게 썬 양파들이 내 혓바닥 위에서 춤을 췄다. 뜨뜻한 기름을 입 안 가득 뿌려가며. 일부러 삼키기도 전에 목을 타고 넘어간 기름에 헛구역질이 나 번지르르해진 입술에 꽉 힘을 주었다. 


열심히 씹어대고 있는 내게 "맛있니?"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삼키지 못하고 씹고만 있던 입 속에 것들을 꿀꺽 삼키고는 미소와 함께 맛있다고 대답해버렸다. 눈앞에 물 잔을 얼른 들이키고 싶었다. '김치를 좀 얹어 먹으면 나을 텐데' 하는 생각과 '시치미'라고 하는 고춧가루 비슷한 것을 잔뜩 뿌려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젓가락을 놀리는 손이 빨라졌다. 비워지는 덮밥 그릇만큼 뱃속이 기름으로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를 않아 구역질과 함께 눈에 눈물이 고여 앞이 뿌예지는 통에 뭘 집어 먹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칠 수가 없어서 그릇 속에 눈을 박고 쉼 없이 젓가락으로 덮밥을 입 속에 밀어 넣었다. 물을 어찌나 마셨는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뱃속이 찰랑 거리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시뻘건 국물 속에 첨벙 헤엄치고 있는 허연 면발을 상상하며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데 집중했다. 


"잘 먹었습니다."


밥을 다 먹고도 물 한 컵을 다 들이켠 뒤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폭 나왔다. 정신력의 승리. 이제 새우튀김은 실컷 음미했으니 평생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정말 '눈물 나게' 맛있었다. 

이전 01화 똥고집으로 꼭꼭 눌러 빚은 만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