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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Aug 27. 2023

똥고집으로 꼭꼭 눌러 빚은 만두

일본식 만두(餃子)

"얼굴색도, 눈 색도 다른 나라에 갈 거야"


 2년간의 휴학을 마무리한 뒤 복학을 하며 결심했다. 나를 아는 사람도, 내가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영어는 중, 고등학교를 다니며 배워도 알 수가 없어서 포기. 중국어는 사성이 어렵다는 말에 포기. 결국 고른 것은 일본이었다. 한국어와 문법이 비슷하고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데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생김새가 비슷해서 적응하기도 쉬울 거라 생각했다. 간단히 말해서 제일 만만했다는 거다. 마침 일본 IT 취업이 유행하고 있었다. 대학 졸업까지 남은 2년을 일본에 가기 위한 준비의 기간으로 삼았다. 둥그렇게 말려 올라갔다 뻗치기 일쑤인 현기증 나는 일본어도, 프로그래밍 공부도 열심히 했다.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으로 밀고 나간 끝에 일본에 지사를 낸다는 회사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일본 땅을 밟기만 하면 현지 회사에서 멋지게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생애 첫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일본에서의 생활은 팍팍하기 짝이 없었다.


부푼 꿈을 안고 만든 통장의 잔고는 항상 빈약했다. 아직 터지지도 않은 입으로 손과 발을 다 동원해 더듬대며 겨우 만든 자랑스러운 결과물이었다. 당시의 나는 즉시 실무에 투입되어 일할 수 있는 '인재'가 아니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신졸 '외국인 노동자'에 불과했다. 어디 가서 할 줄 아는 것을 보여주기는커녕 뭘 할 줄 아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신대륙을 탐험하는 사람처럼 터질 듯 부풀었던 가슴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어에 눌려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다. 당연히 내가 필요한 현지 회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나마 한국 회사에 속해 있어서 월급은 받았다. 집 역시 회사에서 마련해 주어 길바닥에 나앉는 일은 면했다. 얼핏 들으면 돈 받고 몸뚱이 뉠 곳이 있어 편할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원'으로 책정된 월급을 '엔'으로 환전해서 받고 있었다. 엔화의 환율이 높을 때여서 손에 떨어지는 액수가 턱없이 적었다. 먹고살기 위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가서 사 먹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어 되도록 집에서 만들어 먹기로 했다. 하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던 나는 식당에 가도 문제였다. 알아들어야 주문을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긴장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느니 집에서 편히 먹는 것을 택했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일을 하셨던 엄마를 돕기 위해 주로 시키는 것을 했었다. 혼자라 만들 사람이 나 밖에 없으니 이건 싫어도 해야 했다. 사 먹기만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만들 수밖에. 인터넷을 선생님 삼아 레시피를 찾고 만드는 법을 배웠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이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는데 배꼽시계가 울렸다. 슈퍼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 냉장고가 꽉 차 있을 때였다. 에어컨이 달려 있지 않은 부엌으로 나가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심호흡을 하고 부엌과 방을 나누는 미닫이문을 덜컹대며 열었다. 훅 끼쳐 들어오는 뜨거운 공기에 열기가 한가득한 찜통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원룸이면 방 안에 부엌을 같이 넣을 것이지 복도에 나뉘어 있을 건 뭐람. 내 무릎보다 조금 위까지 오는 작은 냉장고를 열었다. 이번엔 시원한 바람이 나와 쪼그리고 앉아있는 나를 식혀주었다. 최대한 천천히 냉장고를 뒤졌다. 싸다고 사 온 간 고기와 쌈을 싸 먹어보겠다고 집어 온 양배추가 보였다.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부추도 보였다. '만두를 해 먹어보자'


한국에서도 가끔 만들어 먹었던 손바닥만 한 만두가 떠올랐다. 두부와 김치를 넣고 만들고 싶었지만 이번엔 일본식으로 양배추와 부추를 넣어보기로 했다. 커다란 볼을 꺼내고 고기를 쏟아냈다. 부추도 깨끗이 씻어 착착 채를 쳤다. 양배추도 채를 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릇이 없었다. 프라이팬에 담고 소금에 절였다. '다음에 뭘 하면 되더라.'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만두피."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만두피가 없었다. 그때는 슈퍼에서 만두피를 판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한국에서 그랬듯 밀가루를 반죽해서 만드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집구석에는 밀가루도, 반죽을 납작하게 밀어낼 밀대도 없었다. 너무 더워서 일찍 일어났던 탓에 아직 오전이었다. 나가서 사 오면 되겠다는 생각에 준비를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쿠키 틀을 파는 가게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집에서 입던 다 늘어난 티셔츠와 너불거리는 바지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몇 장 되지 않는 옷을 놓고 고르고 골라 입고 얼굴에는 화장품까지 칠했다.


좀 전에 만들던 만두 속은 미어터지는 냉장고 속에 넣을 수가 없어 대충 랩으로 싸 두었다. '금방 올 건데'


땡볕을 맞으며 찾아간 쿠키 틀 파는 가게는 열려 있었다. 밀대는 금방 눈에 띄었다. 필요한 것을 찾았으면 집어서 재빨리 계산하고 돌아가면 될 것을. 나는 회화 연습을 하겠다며 주인장에게 밀대는 일본어로 뭐라고 하느냐부터 시작해서 추천할 건 뭐냐는 중 말을 걸기 시작했다. 시답지 않은 나의 질문에 주인장은 친절히 대답해 주셨다. 만두를 만든다니까 만두피부터 만드냐고 놀라면서 맛있게 만들라고까지 해주셨다. 흡족한 표정을 하고 나오는 나의 손엔 기다란 밀대가 쥐어져 있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 나를 맞이하는 땡볕은 더 뜨거워져 있었다. 슈퍼에 가서 밀가루를 사며 시계를 보니 벌써 정오가 다 돼 있었다. 대체 얼마를 이야기하고 서 있었던 건가. 더운 부엌에 내팽개치듯 두고 온 만두 속이 생각나 그제야 발걸음을 재촉했다.


되돌아온 집은 나오기 전보다 더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서둘러 만두피를 만들었다. 만두피 만들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손바닥만 하게 밀어내서 드디어 만두 속을 떠 넣는데…. 뭔가 이상했다. '만두 속에 원래 이렇게 물이 생기나?' '절여놨던 양배추를 제대로 안 짜서 그런가?' 만두 속이 질퍽거리는 기분이었다. 번쩍 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상했다.' 


괜히 이마에 흐르는 담을 닦아내며 생각도 지워냈다. 숟가락으로 떠서 만두피에 넣고 싸는데 물기 때문인지 들어 올리자마자 밑이 터져버렸다. 잘못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만든 만두인데!, 나가서 밀대도 사 오고 만두피도 직접 만들었다고.' 


되는대로 밀가루 반죽을 좀 두껍게 밀어서 만두 속을 넣고 모양만 그럴싸하게 만두의 형태는 잡았다. 그냥 놔두면 반죽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옆에서 바로 프라이팬을 달궈 구워냈다. 구우면서도 만두는 자꾸 터져 나왔다. 구워지는 만두에서 퍼지는 예상치 못한 냄새에 코를 잡으면서도 일본식이라서 그런 거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손바닥만 한 만두를 서너 개 만들어 맛을 보았다. 시큼털털했다.  '설마 서너 시간 만에 고기가 상하려고' 소금 탓이라 우기면서 터져서 형태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만두를 간장까지 찍어 열심히 먹었다. 계속 부엌에 선 채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갔다 와서 만두 속을 보자마자 변해버린 색과 질퍽대는 물기를 보고 바로 눈치챘다. 밀대를 핑계로 밖으로 나가버린 나를 기다리던 고기는 홀로 남겨진 것이 속상했는지 상해버렸다. 내 고집 반만큼만 육질이 변하지 않도록 버텨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꾸역꾸역 만두를 먹는 동안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만두가 순식간에 뱃속으로 사라졌다.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내가 어떻게 만든 건데'를 자꾸만 중얼거렸다. 알아듣고 몸이 별 것 아닌 듯 소화시켜 주길 바랐다.


똥고집은 내 몸 상태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먹고 얼마 되지 않아 신호가 왔다. 좁디좁은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대느라 땀으로 샤워를 했다. 그나마 화장실이 딸린 집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공용 화장실이면 어쩔 뻔했는가.


만두피를 빼고 누드 만두라도 해 먹었다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가게에 가서 회화 연습은 나중으로 미루고 필요한 것만 사서 나왔더라도. 고기가 이상해 보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버리는 게 맞았다. 그놈의 똥고집만 아니더라도. 한 번 해 먹고 말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왕 먹을 거면 정성을 담아 만들어 먹어야지. 그놈의 고집은 던져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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