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둥이들 마중길에 말이다. 残暑(잔쇼)가 너무해서 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残暑
24 절기의 13번째라는 입추가 지나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까지의 기간을 말하는 계절말이다.
남은 더위 같은 느낌의 말.
우리 동네 하늘은 전깃줄이 얼기설기 얽힌 곳이 많아 탁 트인 시원한 하늘을 찾으려면 넓은 곳으로 나와야 한다. 그런데 문득 시선을 돌린 곳에 널찍한 하늘이 보였다. 럭키. 바로 핸드폰을 들어 찰칵 사진을 찍었다.
밤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을 때라 그런지 먹구름 같은 것이 멀리서 밀려오고 있었다. 아직 까만 구름에 뒤덮이지 않은 부분을 얻어내다니 운이 좋았다. (하지만 늦은 밤이 된 지금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가버렸나벼.)
보다가 뭉게뭉게 한 구름이 꼭 대마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파란 하늘을 쥐고 콱 물고 있는 장면이라면 믿을까. 뿔처럼 보이는 곳에 날아다니는 나비는 구름을 구해주려는 정령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별별 생각을 다 하다가 얼마 전 하코네 조각의 숲 미술관에 가서 만난 피카소의 말이 떠올랐다.
芸術家とは、天から、地から、紙の切れ端から、通り過ぎる形から、蜘蛛の巣から、あらゆるところからやってくる感動を受け入れる容器のようなものだ。
(예술가란, 하늘에서, 땅에서, 종이쪼가리에서, 흘러가는 형태에서, 거미줄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곳에서부터 오는 감동을 받아들이는 용기와 같은 것이다.)
- The artist is a receptacle for emotions derived from anywhere: from the sky, from the earth, from a piece of paper, from a passing figure, from a spider's web.
Pablo Picasso
벽에 적어 놓은 이 말을 보고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었다. 오만곳에서 오는 감동을 담는 용기 같은 존재가 예술가라니. 너무나 멋진 말 같지 않은가. 오감을 아니. 어쩌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육감까지 포함해서 모든 감각을 활짝 열고 세상을 느끼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구름을 보고 대마왕(?)을 떠올렸으니 어느 정도는 나도 용기 비슷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별 생각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리고 혼자 뿌듯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미술관에 다니자.'
나는 그림에 조예도 없고, 원래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아이들과 나들이 겸 미술관을 몇 군데 (음. 두 군데였다.) 가보고 그림에 흥미가 생겼다. 정확히는 그림을 보며 그린 사람으로 잠시 빙의되어 그 혹은 그녀가 떠올렸을법한 생각을 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미술관이라는 것이 대부분 거리가 멀고 그래서 가려면 편도로 1시간 반은 걸리며 둘러볼 시간이 2시간 정도밖에 나지 않지만. 게다가 점심은 이동하며 때우거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먹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보려고 한다. 아직 어디 갈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아 참. 피카소의 이름이 파블로 피카소가 아니고 한참 기다란 알 수 없는 이름이라는 걸 알고 있는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로 시작하는 우스개 옛날이야기 이름과 비슷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 일본에서는 寿限無(쥬게무)라는 것이 있다. 김수한무... 도 쥬게무 설화와 관련된 만담이 기원이라고 한다.
이 설화는 초등학교 저학년 국어책에 실려 있는데 듣고 있으면 웃긴다.
'寿限無(じゅげむ) 寿限無(じゅげむ) 五劫(ごこう)のすりきれ 海砂利(かいじゃり)水魚(すいぎょ)の水行末(すいぎょうまつ) 雲来末(うんらいまつ) 風来末(ふうらいまつ) 食(く)う寝(ね)るところに 住(す)むところ やぶらこうじの ぶらこうじ パイポ...'
경사스럽고, 좋고, 오래 살고, 하여간 좋은 말은 다 붙여놨다.
* 건물 앞에 불꽃같은 동상(?) 은 피카소의 작품을 형상화한 것인 줄 알았더니 전혀 다른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냥 조각으로서의 전시물이었던 모양이다. 그걸 이제 알다니 조금 충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