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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의 성장일기 Apr 19. 2024

낮은 자존감 파헤치기 (1): 서울이 아닌 우리 집

하나씩 써보자 

우리 친정집은 부천이다. 아빠가 부천에서 치과 개업의로 오래 일하셨다. 중간에 목동에서 잠깐 살다가, 부천으로 초등학교 고학년 때 다시 이사를 갔다. 지금도 부천에 살고 계신다. 


집이 부천인건, 고등학교 때부터 나에게 콤플렉스였다. 나는 서울에 있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다녔고, 거기에는 주로 목동과 일산 아이들이 많이 다녔다. 나는 목동에 사는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목동에 사는 아이들 중에 유독 귀티나보이는 아이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나도 원래 저기 살았었는데,라는 마음으로 다시 이사 가자고 부모님을 조르기도 했다 (이미 그때도 집값은 벌어져 있었던 듯하고, 목동의 집을 팔지 말고 전세를 줄걸 이라고 부모님도 많이 아쉬워했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런데 그 마음은 대학을 가더니 더 심해졌던 것 같다. 내가 다녔던 외국어 고등학교는 외고 중에서도 뭔가 수수한 편이었다. 화곡동의 논 옆에 위치해 있었고, 소똥 냄새도 간간히 났었던 거 같다. 주변도 매우 소박했고, 우리는 외고 아이들 답게 밤 열 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그런 와중에 서로 크게 다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신촌에 있는 대학교의 경영학과에 들어가고는 우리 집을 이야기하는 게 부끄러워졌다. 정말 잘 사는 집 아이들도 많았고 - 특히 경영학과가 더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선배들이 누구 집이 어디던데 잘 사다보다 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왠지 위축이 되었다. 신촌 역에서 광역버스를 오래 기다려서 타고 가야 하는 우리 집이 부끄러웠다. 제발 서울의 어디든 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교환학생을 갔을 때, 그 학교의 어떤 학생이, 부천이 우리 집이라고 하자 부천에 그 학생 아빠 공장이 있다고 얘기했던 것도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그런 지방에서 치과를 하면 서울보다 수익이 좋다는데 정말이야?'라고 물었던 것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택시를 타고 가거나, 지하철을 타고 갈 때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한강변에 있는 아파트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집이 돈에 쪼달리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성실한 치과의사셨고, 재테크에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운영하던 치과를 넘기고 조금 쉬시다가 최근에 대형병원의 페이닥터로 다시 취직한 아버지 입장에서는, 재테크에 대한 니즈가 은퇴 나이라는 것이 명확한 회사원들보다 덜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성실하게 가정을 꾸려나가셨고, 엄마도 헌신적으로 나와 동생을 키워주셨다. 그런데 나는 그때 정말 너무나도 우리 집이 부천인 게 부끄러웠다. 


사는 동네의 의미가 큰 한국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워낙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걸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도대체 그때는 왜 그렇게 부끄러웠나 생각하니 정말 미스터리이기도 하지만... 그때 나는 우리 집이 부천인 게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20대 초반에 나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쳤던 것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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