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복도 끝에 있는 교무실 문을 열자, 익숙한 형광등 불빛과 커피 냄새가 나를 맞이한다.
교무실 안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강사들의 발걸음 소리로 가득하다.
“아, 영백쌤. 잠깐 이리 와보세요.”
송원장님이 부르는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미묘하게 긴장감을 준다.
나는 서류철을 들고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 월말평가 성적표 봤어요?”
“네, 어제 확인했습니다.”
“상위권 학생들 성적이 조금 떨어졌더라고요. 특히 S중 3학년 반. 거기 영어는 쌤이 맡고 있죠?”
“네…”
말끝이 짧아진다. 나는 알고 있었다.
시험 범위에 있던 몇몇 문제들이 다소 어렵게 출제된 탓이라는 걸.
하지만 원장에게 그걸 설명하는 건, 변명처럼 들릴 수 있었다.
옆자리의 희쌤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내쪽을 힐끔 본다.
그 눈빛은 ‘괜찮아요?’라는 걱정과 동시에 ‘이번엔 무슨 일이지?’라는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교무실이라는 공간은, 같은 동료이자 경쟁자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다음 주부터는 상위권 관리에 더 신경 써주세요. 우리 학원 평판이 달린 문제니 까요.”
송원장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속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날 오후, 수업 준비를 하던 중 희쌤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건다.
“쌤, 원장님한테 뭐 들었어요?” “그냥… 성적 관리 얘기 좀.”
“요즘 부모님들이 예민해요. 조금만 성적 떨어져도 바로 전화 오거든요.”
그 말은 사실이었지만,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건 그 말 뒤에 숨은 뉘앙스였다.
마치 ‘조심해요, 쌤. 누가 또 뭐라고 할지 모르니까’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수업 시작 전, 복도를 지나며 문득 생각한다.
까대기 현장에서 느끼는 건 상자의 무게, 몸의 고됨이었다면,
이곳에서 느끼는 건 사람들의 시선과 말속에 담긴 무게였다.
그날 마지막 수업, 한 학생이 복습 문제를 풀다 손을 들었다.
“쌤, 이거 수업 시간에 안 한 건데요?”
“어? 그래? 그럼 같이 해보자.”
나는 칠판에 문제를 쓰고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 순간, 문틈으로 스쳐간 그림자 하나.
송원장이 반을 훑어보며 조용히 사라졌다. 이상하게 심장이 두어 번 빠르게 뛰었다.
수업이 끝나고 빈 강의실에 혼자 남았다. 칠판 위 분필 자국이 어지럽게 번져 있었다.
까대기에서 옮긴 상자 자국이 손바닥에 남는 것처럼, 오늘 하루의 말과 시선이 마음에 남았다.
문득, 내가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대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