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백쌤입니다! 오늘도 100 문장, 같이 외워볼 거예요.”
거울 앞에서, 입꼬리를 억지로 들어 올린다.
눈 밑 다크서클이 안경 너머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그 표정은 감춰야 했다.
학생들에게 피로를 들키면, 오늘 하루 수업의 분위기가 무거워질 테니까.
새벽 4시 30분. 까대기 현장에서 손목시계를 본 순간, 마지막 트럭이 막 문을 닫았다.
얼굴에 땀과 먼지가 엉켜 있었고, 손바닥은 박스를 붙잡느라 달아올라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는 딸의 머리를 감기고 있었다.
나는 대충 샤워를 마친 뒤, 아이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아이의 손은 아직 따뜻했지만, 내 손은 밤새 차가운 박스를 옮기느라 얼어 있었다.
오후 4시, 학원.
강의실 문을 열자 학생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한 녀석이 나를 보더니 장난스럽게 외쳤다.
“선생님, 오늘 다크서클 무릎까지 내려왔어요!”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건 실력의 그림자야~”
웃음이 터졌고, 분위기는 조금 풀렸다.
칠판에 영어 문장을 적으며 나는 다시 강사의 얼굴로 돌아갔다.
“자, 이 문장은 암기만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인생에도 쓸 수 있는 문장이에요. 비교급이 적용된 문장입니다. You are stronger than you think.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다.”
말하면서, 나는 속으로 그 문장을 나 자신에게도 반복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아니, 강해야 한다.
점심시간. 교무실 한쪽에서 희쌤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내게 물었다.
“쌤, 요즘 살 빠지신 것 같아요. 괜찮으세요?” “그냥… 조금 바빠서요.” 말은 짧게, 웃음은 습관적으로.
그 웃음 뒤엔 누군가 내 새벽을 들여다볼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내가 까대기에서 땀 흘리고 있는 모습을 이곳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나를 어떻게 볼까.
오후 수업이 끝나고, 영작 테스트를 제출하던 한 학생이 나를 붙잡았다. “선생님은요… 원래 꿈이 뭐였어요?”
순간, 가슴 깊은 곳이 움찔했다. 꿈. 언제부턴가 그 단어는 내 사전에서 사라져 있었다.
'버티는 것'이 하루의 전부가 된 지 오래였다.
“선생님은… 영어를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학생들이 영어 때문에 인생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
입으로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마음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나도…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이러는 건데.
저녁 10시, 빈 강의실에서 혼자 칠판을 닦았다. 분필 가루가 손끝에 묻어 하얗게 번졌다.
지워도, 지워도 어딘가에 남아 있는 하얀 흔적처럼, 내 삶에도 하루의 피로가 얇게 쌓여 있었다.
그때, 칠판 구석에서 학생이 남긴 낙서를 발견했다.
선생님, 항상 감사해요. 쌤 수업 듣고, 영어가 조금씩 재밌어졌어요 :)
그 한 줄이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아니, 내일도 버틸 이유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