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이시죠?”
다섯 번째 트럭이 후진을 마치고 문이 열리던 그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턱에 반창고를 붙인, 스물 중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내 옆에 섰다.
“네. 오늘이 첫날입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짧게 대답하자,
그가 손을 내밀었다.
“문이에요. 저는 여섯 달째 일하고 있어요. 형님이라 불러도 되죠?”
내 손을 꽉 쥐는 그의 손바닥엔 굳은살이 단단히 박여 있었다.
문이.
이름처럼 단정한 인상.
책임감이 짙게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말투엔 군더더기가 없었고,
눈은 주변을 빠르게 훑으며 현장을 파악하고 있었다.
“형님은 본업이 따로 있죠?”
“영어 강삽니다. 낮에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 사람들 다 그래요. 냉장고 기사, 대리운전기사, 야간 편의점 알바…
낮엔 각자 다른 삶 살고, 새벽엔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이죠.”
그 말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이곳이 내게만 이질적인 공간은 아니란 걸,
다들 어딘가에서 넘어지고 여기로 흘러온 걸,
알게 되었다.
“야! 그만 수다 떨고 움직여!”
목소리가 커지자, 우리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수형님.
1956년생.
현장에서는 전설처럼 불리는 분이었다.
까대기를 마치고 낮에는 주유소에서 또 일하신다고 했다.
허리는 꾸부정하고, 손은 새까맣게 거칠지만
그의 움직임은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괜히 힘만 빼지 마. 첫 시작 5분과 마지막 5분이 항상 중요해.
자기 몸에 맞게 리듬 타야 오래 한다. 안 그럼 다쳐! 다치면 누구 손해겠어?”
툭 던지는 한마디.
그 말 안에 몇십 년의 경험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그 말대로
속도를 조절하며 몸을 움직였다.
누군가는 “늙은이 잔소리”라며 흘려들을 법한 말이었지만,
여기선 그 말이 생존의 기술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트럭에서 기팀장을 처음 만났다.
“이거, 냉장제품이네. 손 빨리 놀려야 해요. 이건 늦으면 클레임 나요.”
그는 손에 냉기가 느껴지는 박스를 덥석 집으며 말했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작업을 이어갔다.
냉장고 수리 기사 출신.
하루 벌어 하루 쓰는 삶에 익숙한 사람.
일의 속도, 감각, 집중력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일이 끝나고
야외 흡연구역에서 기팀장은 담배를 꺼내며 내게 물었다.
“낮엔 딴 일 하죠?”
“학원에서 애들 가르쳐요.”
내가 대답하자 그가 피식 웃었다.
“나도 원래 학원 강사였어요. 그만두고 기술 배우러 갔다가 지금은 냉장고 만지고 있어요.
여긴 별 사람 다 있어요. 근데 결국 우린 같은 자리에 모여 박스 나르며 하루를 버티는 거죠.”
그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같은 자리, 같은 박스, 같은 새벽.
하지만 이유는 다 다른 사람들.
문이.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부양하고 있었다.
“엄마가 다리를 다쳐서요. 제가 벌어야 돼요.”
담담하게 말하는 그 목소리에,
슬픔보단 책임감이 더 묻어 있었다.
수형님.
손가락 관절은 휘어 있었고,
무릎은 항상 통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나약하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강해 보였다.
기팀장.
과묵하지만 현장에서는 리더 같았다.
지금 당장 먹고사는 데에 집중해야 하는 사람.
하지만 그의 눈빛은 늘 집중했고, 동료들의 리듬을 잊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이 트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며
나는 문득,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무언가를 짊어진 채,
같은 새벽을 건너고 있었다.
가장의 무게,
청춘의 무게,
노년의 무게.
우리 모두는
다른 이유로, 같은 시간에
같은 박스를 옮기며
삶을 견디고 있었다.
기묘하게도,
몸은 부서질 듯 아팠지만
마음은 덜 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