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장이다. 아내와 딸, 나의 가족.
작은 집 안에서도 서로 다른 온도와 리듬이 존재하지만,
우린 하나의 호흡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특유의 귀여운 말투로 이야기하고,
아내는 아이를 재우고, 밤늦게까지 학원 수업 준비를 이어간다.
나도 강단에 서고, 수업이 끝나면 교무실 책상 앞에서 내일의 강의안을 점검한다.
그렇게 사는 게 버겁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적어도, ‘버틸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교육 시장은 내가 알던 학원이 아니었다.
학생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고3 반은 아예 폐강이 됐다.
전체 수업 시수가 반 토막이 나면서, 그만큼 수입도 크게 깎였다.
“형, 요즘 많이 빠졌죠?”동료 강사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나는 애써 웃었다. “뭐, 다 비슷하지 뭐.” 그러나 속은 말라가고 있었다.
고정 지출비용은 그대로였다.
전세 대출 이자, 관리비, 기타 공과금, 학습지 비용. 그리고 각종 카드 명세서...
“아빠, 이거 사줘~”작은 손에 들린 캐릭터 장난감 하나에도 나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루는 퇴근 후 집에 들어갔는데, 냉장고 문을 여니 반찬통이 모두 비어 있었다.
그날 저녁, 아내는 말없이 냉동 미역국과 즉석밥을 꺼냈다.
“오늘은 그냥 간단히 먹자.” 그 말 한마디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투정도 하지 않았다. 불평은 할 수 도 없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그날 밤, 나는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검색창을 열었다.
‘새벽 고수익 알바’ ‘까대기 단기 알바 시급’ ‘물류센터 알바 후기’
손가락이 떨렸다. 어느 링크를 누를지 망설이는 사이, 마음 한편이 속삭였다.
“진짜 이걸 하려는 거야?”
나는 대학을 나왔다. ROTC 장교로 군복무도 마쳤고, 제약회사에서 일했었던, 그리고 지금은 ‘영어 강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내가.
그런 내가, 새벽마다 물류센터에서 박스를 옮긴다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을?
자존심이, 자존감이, 자아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나는 신청 버튼을 눌렀다.
왜냐하면, 나는 아빠니까. 남편이니까. 벌어야 하니까.
첫 출근은 새벽 5시 반이었다.
양주 외곽의 물류센터는 도시의 잠든 어둠과는 다른, 묘한 열기와 긴장이 뒤섞인 공간이었다.
트럭은 엔진 소리를 내며 후진했고, 문이 열리자마자 박스들이 쏟아져 내렸다.
형광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일에 뛰어들었다.
나는 그 틈에 끼어 조용히, 빠르게, 한 박스씩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목은 꺾이고, 허리는 당겼고, 종아리와 허벅지는 쥐가 나기 직전까지 뻐근했다.
현장엔 말이 없었다. 누구도 내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그저, 일은 일처럼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작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빠, 오늘도 조심해~”
앞머리를 고무줄로 묶은 딸아이가 현관문 앞에서 건넨 말.
작고 여린 목소리. 그 한마디가 내 어깨를 다시 일으켰다.
까대기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단지 무거운 박스를 옮기는 게 아니었다.
그건‘나는 지금 이 가족을 지켜내고 있다’는 자존심 없는 자존심이었다.
마음은 이미 무너져 있었지만, 몸은 끝까지 버티려 애썼다.
내가 이 일을 선택한 건, 그 무너짐 위에 새로운 다짐을 쌓기 위해서였다.
나는 강사가 되기 이전에 가장이었고, 가장이기 전에 사람이었다.
이 새벽의 무게는 어쩌면 나의 무너짐을 덮어 주는 담요 같았다.
춥고 두려운 현실을 조금이라도 감싸 안으려고,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박스를 들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살기 위해 새벽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