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날짜가 중요했을까. 사실 계절도, 요일도, 시간도 무의미했다.
중요했던 건 단 하나.
그날 새벽, 대한민국 전체가 멈췄다는 거였다.
뉴스 속보는 쉴 틈 없이 터져 나왔다.
‘대통령, 계엄령 선포.’
‘전국 주요 도로 통제, 시민들 대혼란.’
‘SNS·포털 일시 차단, 생필품 사재기 조짐…’
핸드폰 화면 속에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자막들이 계속 흘러나왔고,
그 화면을 들여다보는 나는,
그 영화 속 등장인물도 아니고, 관객도 아닌…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이상한 새벽이었다.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 있었고,
나는 그 와중에
‘첫 까대기 알바’를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도망쳤다.
지하철을 탔고, 고속버스를 탔고, 무언가로부터 피하려는 듯 서둘렀다.
그런데 나는…
그 반대였다.
‘대한민국이 멈춘 날, 나는 살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 속 지도 앱이,
내가 지금 어떤 인생으로 진입 중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곳은 '○○택배 ○○물류센터'.
거대한 창고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방문자 같았다.
누가 나를 반겼나?
아무도.
어디로 가야 하지?
몰랐다.
줄은 어디서 서는 거지?
아무도 줄을 서 있지 않았다.
심지어 나 같은 '신입'을 신입처럼 대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금세 왔다 사라질 걸 아는 건지.
나는 손에 땀이 배인 핸드폰만 들고
그 커다란 창고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사방은 어두웠다.
물리적인 어둠도 그랬지만,
그보다 더 깊었던 건
‘인정받지 못한 존재’로서의 침묵과 참담함이었다.
나는 어떤 역할도 부여받지 못한 채,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채,
어정쩡하게, 그냥 서 있었다.
‘괜히 왔다.’
‘돌아갈까?’
‘이러려고 대학까지 나왔나?’
속으로만 되뇌던 자책들이
현실 속의 차가운 공기와 얽히며
가슴을 조여왔다.
나는 선생이고, 누군가에게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인데—
이곳에서의 나는, 그 모든 과거가 삭제된 존재였다.
그날, 나는 사회로부터도, 가족으로부터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서도
제외된 느낌이었다.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때였다.
마음속에서 문장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오늘, 나 자신에게 계엄을 선포한다.”
누구도 나에게 명령하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렸다.
도망치지 말 것.
버텨낼 것.
굴욕을 견디며, 하루를 완주할 것.
이건 생존이었다.
생존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면,
그보다 먼저 ‘버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결심을 하자,
차가웠던 공기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조끼 받아 가세요! 신입 분들!”
어디선가 들려온 외침.
나는 기계처럼 손을 들었다.
형광색 반사 조끼가 내 손에 들어오고,
그걸 몸에 걸쳤을 때—
비로소 나는
'이곳에 존재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순간, 조끼가 유니폼인 것처럼
나도 그들과 같아졌다.
소속이 생겼고, 역할이 생겼다.
그리고 마침내,
내 인생 첫 까대기가
시작됐다.
컨베이어 벨트는 말이 없었다.
계속 흘러왔다.
크고 무거운 상자, 작지만 조심해야 할 상자,
터질 듯한 박스, 찢어진 박스.
박스를 옮길 때마다,
몸의 각 관절은 낯선 비명을 질렀다.
손목, 팔꿈치, 어깨, 허리—
어느 하나도 나를 위해 준비된 부위는 없었다.
땀이 솟구쳤고,
손이 미끄러졌고,
등 근육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만하고 싶다.
그만하고 싶다.
제발 그만하고 싶다.
하지만 중간에 빠질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그저 박스를 옮기고, 또 옮기는 일밖에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날로부터 몇 달이 지났다.
나는 이제 박스를 보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고,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도 손끝으로 감지한다.
테이프가 단단한지 헐렁한지도 느껴진다.
심지어 어떤 브랜드 박스는 모양만 봐도 무게가 떠오른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도,
가끔은 그날 새벽의 서늘함이
내 목덜미를 스치듯 지나간다.
그날의 내 모습은—
모든 것이 불확실했고,
모든 것이 두려웠고,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였다.
나는 그날의 나를
잊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나는 분명히
그날 무너졌고,
그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