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학원에 출근해서, 교무실 문을 열자 익숙한 커피 향 대신 어딘가 날카로운 공기가 먼저 스친다.
오늘은 뭔가 다르다.
책상 위에 놓인 주간 수업 계획표에 빨간 펜으로 빼곡하게 적힌 메모가 보인다.
‘숙제 검사 철저 / 복습 테스트 전원 실시 / 상위권 집중 관리’
누가 썼는지 이름은 없지만, 이건 분명 나를 겨냥한 글씨였다.
글자 끝이 뾰족하게 서 있었다.
“아, 영백쌤. 어제 S중 반에서 복습 안 했다고 하던데요?”
옆자리 희쌤이 무심한 듯 던진 말이 교무실 가운데로 툭 떨어진다.
“아, 그거… 어제 시험 범위에 없는 부분이라…”
내가 설명하려는 순간, 뒤쪽에서 다른 강사가 말을 자른다.
“범위에 없어도 해야죠. 부모님들은 그런 거 모르잖아요.”
그 말에, 교무실 안 몇몇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한다.
나는 마치 한밤중 물류센터에서 무거운 상자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이 시선들의 무게를 버텨야 했다.
“저는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학생들이 이미 충분히 힘들어하는 걸 알아요.
그래서 우선순위를 조절하는 거고요.
무조건 많이 시킨다고 실력이 늘진 않잖아요.”
말이 끝나자, 잠깐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건 곧 반박의 신호였다.
“그건 쌤 생각이고, 여기선 학원 기준이 우선이에요.”
다른 강사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 순간, 까대기 현장에서 팀원들과 나누던 농담이 떠올랐다.
거긴 서로의 허리 상태, 손목 통증을 걱정해 주던 사람들이었다.
여긴… 서로의 틈을 찾고, 그 틈으로 말을 밀어 넣는 사람들이었다.
송원장이 교무실로 들어오며 대화를 끊었다.
“다들 수업 준비하세요. 학생들 앞에서 표정 관리 잘하시고.”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인지, 모두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리에 앉아 프린트를 정리하며, 문득 깨달았다.
까대기에서의 무게는 상자와 땀으로 끝나지만, 이곳의 무게는 말과 표정으로 오래 남는다는 걸.
퇴근하던 길, 문득 오늘 주고받았던 말들이 밤새 손목을 짓누르는 상자처럼 마음에 남았다.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까대기보다 이곳이 더 버거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