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무게의 의미

by 영백

새벽 공기가 뺨을 스친다.

까대기 현장을 마치고 나오는 길, 손끝이 얼얼하다.

오늘은 유난히 손목이 욱신거린다.

파렛트 위 상자들이 평소보다 높게 쌓여 있었고,

포장 테이프는 더 단단했다. 팔뚝이 묵직한 피로를 품은 채 축 늘어져 있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6시 08분.

집에 가면 딸아이의 아침 등교 준비를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이다.

버스를 타지 않고 그냥 걸어본다. 발자국이 새벽의 적막을 깨뜨린다.


현관문을 열자, 딸아이의 발걸음이 마치 작은 폭풍처럼 쏟아져 온다.

“아빠!”

그 얼굴에 묻어 있는 순수한 기쁨이, 피곤한 내 몸을 잠시 잊게 만든다.


“오늘은 어땠어?”

“음… 무거운 상자가 많았어.”

“그럼 아빠도 운동 많이 한 거네!”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난다. 운동이라기보다, 그저 버티는 노동이었지만.

아내는 주방에서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손에는 따뜻한 두유가 들려 있고, 눈빛에는 걱정과 이해가 뒤섞여 있다.

“오늘 저녁은 좀 일찍 와. 우리 셋이 같이 밥 먹자.”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학원에 가는 버스 안.

창밖 풍경은 늘 보던 모습인데, 요즘은 다르게 보인다.

까대기를 시작한 후, 사람들의 어깨가 더 무겁게 보인다.

누군가의 표정 속 피로가, 대화 속 불안이, 예전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교실을 나간다.

칠판 한쪽에 남은 분필가루를 털어내는데,

뒤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아직 가방을 메지 않은 채 다가왔다.


“선생님, 손목에 파스 붙이셨어요?”

나는 순간 반사적으로 손목을 감싼다.

“아, 이거? 그냥… 좀 무리했나 봐.”

“무리요? 운동하셨어요?”

아이의 눈빛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나는 웃으며 대답을 돌린다.

“그냥 무거운 걸 조금 들었더니 그렇네.”

“헬스 하세요?”

“비슷한 거지. 무거운 걸 들어야 힘이 생기는 법이니까.”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간다.

하지만 내 마음은 묘하게 흔들린다.

그 무거움이 단순히 덤벨이나 바벨이 아니라,

철제 바닥 위에 쌓인 수백 개의 택배 상자라는 걸 누군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면서.


저녁 자습 시간, 교실 한쪽에서 한 학생이 문법 문제를 붙잡고 신음한다.

“선생님, 이거 너무 어려워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그럴 때일수록 버텨야지. 머리도, 몸도, 마음도.”

내 말이 내 귀에 다시 들어온다. 마치 나 자신에게 건네는 다짐처럼.


수업을 마치고, 불 꺼진 교무실 창에 내 얼굴이 비친다.

다크서클은 여전히 깊고, 파스는 아직 손목에 붙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방을 메고 걸어 나선다.

오늘도 무거운 것을 들었고, 또 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 무게 속에서 나는 조금씩 더 강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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