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가 뺨을 스친다.
까대기 현장을 마치고 나오는 길, 손끝이 얼얼하다.
오늘은 유난히 손목이 욱신거린다.
파렛트 위 상자들이 평소보다 높게 쌓여 있었고,
포장 테이프는 더 단단했다. 팔뚝이 묵직한 피로를 품은 채 축 늘어져 있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6시 08분.
집에 가면 딸아이의 아침 등교 준비를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이다.
버스를 타지 않고 그냥 걸어본다. 발자국이 새벽의 적막을 깨뜨린다.
현관문을 열자, 딸아이의 발걸음이 마치 작은 폭풍처럼 쏟아져 온다.
“아빠!”
그 얼굴에 묻어 있는 순수한 기쁨이, 피곤한 내 몸을 잠시 잊게 만든다.
“오늘은 어땠어?”
“음… 무거운 상자가 많았어.”
“그럼 아빠도 운동 많이 한 거네!”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난다. 운동이라기보다, 그저 버티는 노동이었지만.
아내는 주방에서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손에는 따뜻한 두유가 들려 있고, 눈빛에는 걱정과 이해가 뒤섞여 있다.
“오늘 저녁은 좀 일찍 와. 우리 셋이 같이 밥 먹자.”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학원에 가는 버스 안.
창밖 풍경은 늘 보던 모습인데, 요즘은 다르게 보인다.
까대기를 시작한 후, 사람들의 어깨가 더 무겁게 보인다.
누군가의 표정 속 피로가, 대화 속 불안이, 예전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교실을 나간다.
칠판 한쪽에 남은 분필가루를 털어내는데,
뒤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아직 가방을 메지 않은 채 다가왔다.
“선생님, 손목에 파스 붙이셨어요?”
나는 순간 반사적으로 손목을 감싼다.
“아, 이거? 그냥… 좀 무리했나 봐.”
“무리요? 운동하셨어요?”
아이의 눈빛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나는 웃으며 대답을 돌린다.
“그냥 무거운 걸 조금 들었더니 그렇네.”
“헬스 하세요?”
“비슷한 거지. 무거운 걸 들어야 힘이 생기는 법이니까.”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간다.
하지만 내 마음은 묘하게 흔들린다.
그 무거움이 단순히 덤벨이나 바벨이 아니라,
철제 바닥 위에 쌓인 수백 개의 택배 상자라는 걸 누군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면서.
저녁 자습 시간, 교실 한쪽에서 한 학생이 문법 문제를 붙잡고 신음한다.
“선생님, 이거 너무 어려워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그럴 때일수록 버텨야지. 머리도, 몸도, 마음도.”
내 말이 내 귀에 다시 들어온다. 마치 나 자신에게 건네는 다짐처럼.
수업을 마치고, 불 꺼진 교무실 창에 내 얼굴이 비친다.
다크서클은 여전히 깊고, 파스는 아직 손목에 붙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방을 메고 걸어 나선다.
오늘도 무거운 것을 들었고, 또 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 무게 속에서 나는 조금씩 더 강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