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무게를 나누는 법

by 영백

수업이 끝난 교무실.

책상 위에는 채점이 덜 끝난 시험지와 다음 주 수업 자료가 어지럽게 놓여 있다.

펜을 쥔 손목이 욱신거려 잠시 놓는다.

창문을 열자 서늘한 바람이 스며든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아직 새벽의 찬 기운이 남아 있다.


그때 휴대폰 화면에 ‘기팀장’이라는 이름이 뜬다.

“쌤, 오늘 야간에 한 명 빠졌는데 가능해요?”

예전엔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던 기팀장.

언제부턴가 ‘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학원 강사라는 걸 알게 된 이후였을 거다.

그 호칭에는 장난 반, 존중 반이 섞여 있었다.

“갈게요.”

짧은 대답이지만, 그 뒤엔 여러 장면이 스쳐 간다.

이번 달 카드값, 딸아이 학원비, 전기세.

잠시 망설일 틈도 없이, 몸은 이미 그 무게를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밤 11시, 물류센터 문을 열자 익숙한 기계음과 냉장고 같은 공기가 맞아준다.

기팀장이 장갑을 건네며 웃는다.

“쌤, 오늘은 무거운 거 없을 거예요.”

나는 웃으며 받아치지만, 속으로는 안다.

무게란 언제나 예상보다 무겁다는 걸.


첫 번째 라인의 상자들은 크기와 무게가 제각각이다.

어떤 건 한 손으로 들 수 있지만, 어떤 건 허리를 깊게 숙여야만 들어 올릴 수 있다.

단단히 감긴 테이프는 마치 내 하루가 묶여 있는 듯 쉽게 풀리지 않는다.


옆에서 문이가 팔뚝으로 땀을 훔치며 툭 던진다.

“형, 이거 하루 하면 헬스장 필요 없어요.”

“그러게, 쌤은 회원권 아껴서 좋겠네.”

기팀장이 웃으며 거든다.

그 웃음소리 속에서,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로 이 무게를 들고 있다는 걸 안다.


새벽 3시를 넘기자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때 수형님이 커피 캔을 건네며 말한다.

“젊은 사람들은 참 대단해. 난 이제 하루치 한계야.”

그 말이 농담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가슴 깊이 들어온다.

잠깐의 대화와 웃음이 이 긴 새벽 노동 속에서 서로를 지탱하게 도와준다.

마지막 파렛트를 비우고 밖으로 나오자 별빛이 희미하게 깔린 새벽하늘이 보인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오면서 피로와 함께 묘한 해방감이 스며든다.


그 순간 문득 든 생각.

이 무게를 혼자 짊어지는 건 힘들지만,

누군가와 나누면 버틸 수 있다는 것.

상자 하나, 두 개를 함께 들듯, 삶의 무게도 그렇게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것.


집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고 발걸음을 죽인다.

그럼에도 침실에서 들려오는 딸아이의 나직한 숨소리가 내 마음을 데운다.

오늘도, 나는 그 숨소리를 지키기 위해 무게를 들었다.

그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게 내가 버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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