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대기 현장은 오늘, 드물게 숨 고르기가 가능했다.
벨트 위 상자들이 느리게 흘렀고,
우리는 여유를 부리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문이의 웃음소리가 창고 벽에 부딪혀 튕겨나갔고,
수형님은 연신 “오늘은 날씨가 사람 살겠다”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잠시나마 손목의 묵직한 통증도 잊을 수 있었다.
‘학원에서도…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품고 학원 문을 열었다.
그러나 대답은 불과 5초 만에 나왔다.
복도 끝에서 학생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손에는 문제집, 눈에는 질문이 가득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의 상자들이 방향만 바꿔 내 앞에 쏟아진 듯했다.
“선생님, 어제 숙제 37번이 왜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쌤, 이번 모의고사 영어지문 이거 좀 봐주세요.”
“이 문장 어순이 왜 이런 거예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목소리가 덮쳤다.
칠판 앞으로 걸어가기도 전에 손에 책과 연필이 쥐어졌다.
까대기 현장에서는 한 박자 숨을 고를 틈이라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연속 동작이었다.
한 명의 질문이 끝나면, 바로 다음 학생이 기다린다는 신호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복도에서는 컵라면 냄새가 퍼졌고,
교무실 안에서는 복사기의 모터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렸다.
그 소리가 어쩐지 벨트 돌아가는 소리와 겹쳐 들렸다.
책상 위에 놓인 커피는 아직 뚜껑도 열지 못한 채 식어갔다.
오후 수업이 시작되자, 교실은 또 다른 전쟁터가 됐다.
아이들의 시선은 집중됐고,
분필 부스러기는 손가락 사이에 붙어 있었다.
한 번 숨을 들이마실 틈조차 없는 시간.
까대기에서 느꼈던 그 짧은 ‘숨 고르기’는 여기선 사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이들이 이해하는 순간 번쩍이는 표정이 나를 버티게 했다.
수업이 끝난 뒤, 의자를 돌려 앉으며 창밖을 봤다.
해가 저물고, 어둠 속에서 학원 간판 불빛이 켜졌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숨 가쁜 하루가 끝나면,
다시 새벽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
또 다른 숨 고르기를 기다리게 될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