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DBADA Oct 24. 2021

작품 증명서 만들어주세요.

소설사진 ㅣ 어느 날, 카메라에 담은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초대장으로 사용되는 카드형 안내장이 나오면서 대충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약 40일간의 준비를 끝으로 조촐한 오프닝 인셉션을 기점으로 전시회가 시작 될 참이다.      


아침부터 전시회장에 나와서 작품을 설치하고, 청소를 하고, 판매할 엽서들과 작가노트를 배치하고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약 두어 시간 뒤엔 전시회 오픈 인셉션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름 음식을 곧잘 하는 편이라, 간단한 핑거푸드와 음료는 직접 준비하기로 했다. (행여 전시회를 계획 중인 분들은 직접 하지 마시길. 오픈 당일은 정말 바쁘고, 뭔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그러던 중에 담당 큐레이터가 필자를 찾았다.     


“작가님. 혹시 작품이 판매되면 작품 증명서가 있어야 해요. 시간 되시는 대로 그것도 준비해 주시면 저희가 보관하고 있다가, 작품이 판매가 되면 작가님 사인이랑, 갤러리 직인 찍어서 구매하신 분께 드릴 거예요.”   

  

아직 팔리지도 않았고 행여 팔릴지 알 수 없는 작품의 증명서를 미리 받는다고? 그리고 작품 증명서는 어떻게 만드는데? 지난번 신진작가 전시회에서는 그런 거 없었는데? (알고 보니 지난번 신진작가 전시회는 갤러리 보증서로 대체됐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도 얼굴은 여유롭게 “아 그거요? 알겠습니다.” 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네. 내일 드릴게요.”     


그리고 오픈 인셉션을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게 집으로 돌아와서 작품 증명서를 열심히 검색했다.     


대체로 작가가 직접 발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부득이하게 그러지 못하는 경우에는 작품의 보관소 또는 소유자가 발행했다. 이도저도 아닐 때는 미술품 감정 평가서가 작품증명서를 대체하는 것 같았다. 너무 오래된 작품이나 작가가 사망한 작품은 갤러리나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갤러리도 작가에게서 직접 구입한 작품이 아니면 권위 있는 미술품 감정평가사에게 감정을 의례해 진품 여부를 판단한다. 이는 작품 증명서나 마찬가지의 효력을 가진다.     


양식도 대충 정해져 있었다.

작품 증명서 양식 ㅣ 외국에 팔 때는 영어로 해주는 것이 좋다.


간단하다. 솔직히 대충 만들고자 한다면 그냥 A4종이에 작가가 직접 휘갈겨 써서 도장 하나 찍어 주면 끝이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성의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피카소나 앤디워홀 등의 초 유명 작가라면 모를까 (그들이라면 그런 작품 증명서도 값어치가 엄청 날 거 같다.) 이제 시작하는 작가들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이름이 있어도 깔끔하게 프린팅 된 작품증명서를 사용 하는 것이 상식이다. 더욱이 요즘은 다들 컴퓨터 사용 능력이 상당해서, 판매되는 작품을 찍어서 그 이미지를 작품 증명서에 넣어서 출력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만의 작품 증명서를 한 장 만들었다. 디지털 사진기로 작품을 하는 필자는 따로 실물 액자를 찍지 않고, 그냥 원본 이미지를 줄여서 넣기로 했다. 사진에 대한 정보, 전시회 참여여부, 에디션과 진품임을 보장한다는 내용으로 작성을 한 뒤 도장을 찍으면 작가가 하는 일은 끝이다. 혹시 전시 중 판매되는 작품은 갤러리의 보증서도 함께 발행된다.     


그렇게 작품 증명서를 만들다 보니 아직 팔리지도 않은 작품들의 증명서를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이 너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ㅋ     


그래서 다음 날 이미지를 삽입하지 않은 작품 증명서 한 장을 들고 갤러리에 갔다. 그리고 작품이 판매되면 이미지를 삽입해서 다시 출력하겠다고 말했다. 헌데, 갤러리측은 작품 하나를 기증받길 원했고(사전에 충분히 양해 된 내용이다.) 그 작품을 판매된 작품으로 액자 밑에 스티커를 붙여 이목을 끌기 원했던 것이다.     


“아하. 그래서 작품 증명서를 원했구나.”    

 

해서 나는 작품증명서에 이미지를 넣어서 출력하기 때문에, 전시회가 끝나고 팔리지 않은 작품 중에 한 작품을 골라서 기증 할 테니, 그냥 그때 가서 작품증명서를 출력하기로 했다.


여기서 참고로, 갤러리에서 작품을 기증 받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유명하지 않고, 작품이 팔릴 가능성이 낮은 작가들은 갤러리에 작품 하나 기증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내 작품이 어떤 미술관 또는 갤러리에 수장되어 있다는 것도 나름 괜찮은 이력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료로 전시를 진행 해 주는 갤러리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있다. 이때 기증을 한 작품의 에디션은 당연히 하나 올라간다.


결국 전시회가 끝날 때까지 딱 한 점의 사진을 팔았다. 그것도 재력이 있는 이모부께서 큰맘 먹고 하나 구입해 주셨다. <아래, 편안한 그림> 하긴 워낙 가격을 높게 책정해 놓아서 일반 대중이나 컬렉터들이 유명하지도 않은 작가의 작품을 덜컥 사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편안한 그림 ㅣ 2010 ㅣ  피그먼트 프린트 ㅣ  디아섹  ㅣ 30x20 inch  ㅣ  #2/5


그래도 그 한 작품 때문에 작품 증명서를 출력해서 직접 도장도 찍고, 갤러리의 보증서도 받아봤다. 그리고 판매된 작품이 꽤나 괜찮았는지 우연히 전시회를 보고 가신 한 무가지사 회장님이 작품의 임대를 요청했고, 1년 정도 작품을 사옥에 임대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계약금은 뭐, 조촐했지만 기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필자는 그렇게 붕 뜬 기분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 초대전을 마치고, 생활전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약 10여년. 여전히 작품 주제를 정하고 다양한 사진을 찍고, 편집하고, 공모전에 제출하는 평범한 90%의 사진작가의 길을 헤매고 있다. 지금은 그저, 원하는 장비를 마음껏 구비하고, 원하는 시간에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작품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첫 신진작가 공모전에 당선되고 갤러리 관장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사진작가는 발품 팔아 작품 만든다’고. 나에겐 그 말이 참 맞는 것 같다. 지금은 주제에 맞는 세트를 구성해 작품을 찍는 작가들이 더 인기 있는 것 같지만, 개인적인 철학의 부재와 금전의 부재로 필자는 그냥 세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 해석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다.     


아. 사진 찍으러 여행가고 싶다.              




압구정 소나무 ㅣ 2011 ㅣ 피그먼트 프린트 ㅣ 디아섹 ㅣ 사이즈 미정 ㅣ # 미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