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진 ㅣ 어느 날, 카메라에 담은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사진이라는 것이 인화가 아니라 출력을 해도 RGB그대로 색감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앎과 동시에, 사진이라는 것이 종이가 아니라 아크릴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함께 알았다.
그렇다. 지난 편에 출력과 함께 액자를 같이 제작해야 한다는 의미가 바로 이거다. 사진을 출력해서 액자에 끼우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아예 아크릴과 아크릴 사이에 사진을 넣고 압착을 시켜 버리는 방법이다. 독일의 그리거(Grieger)사에서 최초로 개발한 방식이라는데, 디아섹(DIASEC) 이라고 불린다. 아크릴과 아크릴 사이에 사진이 들어가 있어서 아예 프레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요즘은 몇 군데 제작이 가능했지만, 20년 전만해도 아크릴 액자를 만들려면 독일에서 제작을 해 와야 했다. 다행히 필자가 초대전을 할 때엔 한 업체가 관련 기술을 개발해서 막 영업을 시작하던 단계였다. 나는 또 그걸 어떻게 알게 되어서 아크릴 액자가 그렇게 멋져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편에서 이야기한 피그먼트 프린트를 알게 된 계기도 결국 이 업체가 피그먼트 프린트로만 출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파일을 들고 업체를 찾아갔다. 대부분의 디지털 인화 업체는 디지털 파일의 해상도가 그렇게 높지 않아도 인화가 가능했지만, 일반 플로터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에 달하는 잉크를 사용하는 피그먼트 프린트는 원본 파일의 해상도를 어마어마하게 요구했다. 내가 원하는 사이즈를 출력하려면 당시 사진기의 RAW파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결국 일정부분 화질 로스를 감안하고 디지털 파일의 해상도를 뻥튀기 시키는 편법을 도입해서 출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쇄되어 나온 결과물은 인화된 사진과는 매우 차이가 컸다. 일단 전문가들이 완벽히 세팅한 모니터 캘리브레이션과 모니터 색감으로 프로파일을 만들어 세팅한 피그먼트 프린터기에서 출력된 결과물은 작가가 모니터로 편집한 느낌의 색감을 종이에 그대로 구현해 주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인화를 하면서 느꼈던 결과물의 원하지 않는 색감 차이는 계속 필자를 미묘하게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업체의 전문가님에게, 집에서 사용하는 모니터의 캘리브레이션 하는 방법. 이걸 업체의 모니터와 연동하는 방법, 테스트 출력, 출력물을 보고 보정하는 방법. 작가가 의도한 대로 완벽한 결과물을 뽑아내는 방법을 (말로) 열심히 배웠다.
사진이 아크릴 액자로 만들어지는 시간은 보름쯤 된다고 했다. 그때 다시 픽업하러 오기로 하고, 12개의 작품을 피그먼트 출력과 아크릴액자 가격을 합해서 개당 12만원에 159만원 결재를 했다. 왜 144만원이 아니고 159만원이냐고? 아아·······. 부과세 별도란다. ㅠ 그래도 테스트 출력물 비용은 빼주셨다.
피그먼트 프린트 아크릴 액자의 가격은 당시 기준이다. 현재 같은 사이즈를 제작하려면 부가세 포함 개당 18만 원 정도이다.
그럼 왜 일반 액자를 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일반 액자의 경우 기성 프레임을 사용해서 심플하게 제작한다면 개당 5만 원정도면 만들 수 있어서 가격적인 면에서는 거의 100만원을 아낄 수 있었다. 더욱이 프레임만 있으면 직접 표구도 할 수 있어서 하루 이틀이면 제작이 가능했다.
답은 간단하다. 아크릴 액자방식이 그냥 필자의 취향이었다. 한마디로 모던하고 예뻤다. 거기에 피그먼트 프린트는 200년 정도 색상의 변화가 없다고 한다. 또한 종이 위에 아크릴을 압착시켜 놓아서 외부의 오염에 강하다. 일반 액자도 앞면에 아크릴로 덮으면 오염에 강할 수 있지만, 아크릴과 맞닿는 부분이 일부 오염이 될 수도 있고, 아크릴과 사진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 조명의 영향으로 작품을 감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반사를 일으킨다.
첫 개인전. 그리고 초대전인데, 그렇게 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매우 무리해서 프레임리스 아크릴 액자를 만들었다. 비싸긴 하지만 후에 작품을 받아보고는 “진짜 잘했다!”라는 나의 선택에 대한 감탄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