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진 ㅣ 어느 날, 카메라에 담은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이 출력이다. 어차피 초대전 작품은 갤러리 측과 협의 하에 거의 결정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출력이 왜 걱정이냐고? 그냥 사진관에 맡기면 되지 않겠냐고? 그리고 사진이면 인화하는 거지 웬 출력이람? 이라고 생각 할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여기서부터 문제인 것이다. 보통 필자도 사진파일을 디지털 인화점에 보내서 세타은염인화로 뽑아달라고 한다. 더욱이 디지털 사진 파일은 RGB파일이 기본이라서 일반 사진처럼 RGB로 인화를 했을 때 모니터에서 보는 색감과 거의 비슷한 색감을 가진 출력물을 받아 볼 수 있다.
그리고 프린터기로 하는 출력은 CMYK의 잉크를 사용해서 RGB방식의 디지털 파일을 출력하면 모니터와 출력물의 색깔이 달라져서 일러스트를 제외한 사진 작업물의 색감 변화는 감수해야 한다. 고 필자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색감에 공을 들여 작업한 사진을 CMYK로 출력하게 되면 인쇄물의 색감이 변해서 반드시 피해야 했다.
이게 나에겐 상식이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액자업체에서는 출력과 액자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동시에 하지 않으면 액자제작이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출력하는 기계가 뭔지 물어보았더니, 피그먼트 프린트(Pigment Print) 방식이라고 했다. 업체 사이트에 들어가 프린터기 사진을 봤는데, 일반 인쇄소에서 흔히 보던 플로터 방식(대형 잉크젯 프린터)이었다. 한때 광고공모전 꽤나 했었기 때문에 플로터 프린터로 단일 출력을 꽤 많이 해봐서 잘 알고 있었다. 광고공모전에 인쇄 작품을 출품하면 일러스트로 작업한 벡터방식의 이미지는 작업한 색감 그대로 출력이 되는데, 사진은 어떻게 해도 원하는 대로 색감이 나오지 않는다. 특히 그 불타오르는 듯한 새빨간 붉은 색은 거의 표현하지 못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업체 담당자에게 물었다.
“어? 저는 RGB방식으로 인화해서 액자를 하고 싶은데요.”
“네. 사진인데 RGB방식으로 하셔야죠.”
“그런데, 액자 하려면 출력도 같이 해야 한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요?”
여기서 살짝 필자는 멘붕. 나랑 상담하고 있는 직원은 분명 프린팅 전문가인데, RGB랑 CMYK의 차이를 모른다고? 그래서 당당하게 말했다.
“아니. 지금 홈페이지에서 플로터 출력기 사진을 봤는데요. 이거 CMKY로 출력하면 색깔 다 변해요.”
“아항. 고갱님. 저희 플로터는 RGB방식입니다.”
“······네?”
그랬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필자는 그 당시만 해도 세상의 모든 잉크젯 프린터는 CMYK방식만 있다고 생각했다. 젠장. 조금만 덜 당당할 걸·······.
일단 전화를 끊고, 그 업체가 사용하는 프린터기의 모델명을 찾아 열심히 검색 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2년 전이었으니깐, 검색이 잘 되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단편적인 내용이나마 찾아 낸 것을 정리해보자면. 4개짜리 잉크를 사용하는 CMYK로는 RGB방식의 디지털 이미지의 색감을 그대로 재현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아예 만들 수 없는 색깔을 따로 추가한 프린터가 피그먼트 프린터였다. 이 피그먼트 프린터는 10개 이상의 잉크를 사용해서 CMYK가 표현하지 못하는 색감을 최대한 RGB에 가깝게 표현해 낸다는 것이다.
와. 이거 슈퍼 멋쟁인걸!
그동안 필자가 사진 인화를 한 이유는 오직 RGB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색감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인데, 피그먼트 프린트는 발색력이 좋고, 선명하며, 보관기간이 일반 은염인화에 비해서 어마어마하게 길다. 거기에다가 두 번째로 중요한 이유는 작품의 사이즈다.
일반 은염인화의 경우 디지털 인화기로 인화지에 레이저를 노광시켜서 약품 처리하는 방식이라서, 일정 수준을 넘는 사이즈의 인화지를 사용 할 수 없다. 필자가 알기로 최대 30 x 20인치 정도 된다. 반면에 피그먼트 프린터는 잉크 개수는 다르지만 일반 플로터 출력기와 사용방법이 같아서, 가로 사이즈는 고정되어 있지만, 세로 사이즈는 종이의 길이가 되는대로 출력이 가능하다. 즉, 가로 사이즈 1m짜리 프린터는 1 x 3미터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결국 그렇게 필자는 피그먼트 프린트로 12개의 작품을 출력하면서 좌절했다. 피그먼트 프린트의 최고 단점 때문인데, 바로 가격이다. 액자포함 개당 가격이 12만원에 달하는 작품을 마냥 뿌듯하게 바라보기에는 너무 비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