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가 영혼을 담은 술인 이유
소주는 쓰다.
소주는 달다.
소주는 다정하다.
소주는 깔끔하다.
소주는 구수하다.
소주는 청량하다..
소주는 어떤 의미를 가진 형용사를 붙여도 찰떡같이 어울린다 (때로는 찰떡같진 않더라도 썩-잘 어울린다!). 특히나 말도 안 되는 비유를 붙이거나, 은유적으로 표현해도 꽤나 그럴듯하게 어울리고, 수긍하게 되는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소주는 훨훨 나는 새다.
소주는 아버지의 냄새가 난다.
소주는 지긋지긋한 내 남편이다.
소주는 상처 받은 자의 눈물이다.
소주는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친구다.
이렇듯 소주에 어떤 설명을 붙여도 잘 어울리는 것은, 소주는 그 맑고 깨끗한 외모처럼 '그날의 날씨', '같이 마시는 사람', '그날의 이야깃거리', '그날 나의 기분' 모두를 술 한 잔에 완벽하게 담아내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강호동 씨가 굴을 넣은 안성탕면을 끓이면서 부재료가 들어가는 라면을 먹을 때는 안성탕면이 제격이라며 '안성탕면은 라면계의 도화지'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안성탕면이 라면계의 도화지라면, 소주는 주류계의 도화지다. 소주를 마실 때 그 소주 한잔에 어떤 기분과 어떤 마음을 담아낼지는 전적으로 마시는 사람과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덕분에 한 잔, 한 잔 들이켤 때마다 혀에서 느껴지는 알코올 도수와 술맛이 달라지고, 그날 그 술자리의 공기를 오롯이 술맛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소주는 소울이 담긴 술이 된다.
그래서 소주는 소울이다.
술꾼으로서, 소주와 관련된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소주다운 경험'이 있다. 나에게는 8살 때부터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초등학교 6년 시절을 '영혼의 단짝'으로 지냈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말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우리는 '깐부'였다.
서로 다른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친구와 멀어지게 되었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운이 좋게도 평생 내게 힘이 되어 줄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내게는 나를 소중히 생각해주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었지만 가슴 한 켠에는 항상 그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13년이 흘렀고, 그렇게 서로가 스물여섯 살이 되었던 어느 가을날에, 우연히 그 친구와 연락이 닿아 우리는 동네 족발집에서 다시 만났다.
어른이 되어버린 서로의 모습이 어색해서, 하루아침에 성인이 되어버린 타임슬립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서로가 신기해 '허허' 웃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이 됐지만, 이내 우리는 소주 한 잔에 서로의 옛날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날 밤을 보냈다.
우리는 소주 7병을 마시고,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거리며 족발집을 나왔다. 족발 맛은 기억도 나지 않고, 그 집이 맛집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우리에게 전혀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단지 소주를 파는 곳이면 그만이었다. 소주 7병에 대한 여파로, 그날 밤 나는 내 방에 속을 뒤집어놓았고, 그 모습을 본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았다. 친구는 다음 날 회사 첫 출근날이었는데, 아마 술냄새 풀풀 나는 신입사원으로 찍혔을 거다.
비록 우리는 다음 날 가혹하고 잔인한 현실을 마주했지만, 나와 친구가 함께 마신 소주 7병에 우리가 보낸 13년을 담아 잔을 부딪히며 다시 영혼의 단짝이 되었던 기억은 가슴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처음 한 병에는, 우리의 순수했던 초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하며 단 술을 들이켰고,
다음 두 병에는, 서로의 중, 고등학교 시절과 친구들 이야기를 하며 청량한 술을 들이켰고,
다음 세 병에는, 대학생이 되고 난 후 있었던 연애 이야기와 취업 이야기를 하며 쓴 술을 들이켰고,
마지막 한 병에는, 정말 보고 싶었다는 말을 담아 마지막 잔을 삼켰다.
나와 친구가 따로 보낸 13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예전과 같은 단짝 친구로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아무런 편견 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묵묵히 자신의 도화지에 우리의 그리움을 그려준 소주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 6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는 다시 단짝 친구가 되어 (아, 술친구가 되어) 서로의 즐거운 삶을 공유하며 재미있게 지내는 중이다. 일주일 후면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 고맙게도 친구는 나에게 축사를 부탁했고, 축사에 우리가 다시 만났던 소주 에피소드를 담아내고 싶은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지만 차마 친구의 시댁 식구들 앞에서 여자 둘이 소주 7병 마신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그냥 축사는 아름다운 말들로 대신하고, 이 이야기는 여기에 묻어두는 것으로.
[에필로그]
내 방에 속을 뒤집어 놓고 엄마한테 등짝을 맞았을 때, 재밌었던 것은 다음 날 엄마가 나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술 취해서 구토를 하고 있는 딸에게 "네가 치우고 자!!" 하면서 등짝을 때린 것이 내심 미안했던 모양이다. 당시에 나는 서울에서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지 못해 인천 본가로 돌아와 백수로 지내던 중이었는데, 아마도 엄마는 백수인 딸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며 내가 안쓰러워서 다음 날 다시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던 것 같다.
"근데 엄마! 아니야.. 나 백수로 지내는 거 정말 행복했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었어! 그날 술도 취업 걱정 때문에 속상해서 많이 마신 거 아니고... 친구랑 노는 게 너무 재밌어서 많이 마셨던 거야. 나는 맞아도 싸!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