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달콤, 살벌한 매력에 대하여!
2018년 1월, '썸남'과 세 번째로 저녁을 먹던 날, 포트 와인에 빠지게 되었다. 그날, 나의 썸남은 평소에 좋아하는 와인이라며 포트 와인을 식사 자리에 가지고 왔는데, 난 그때 포르투갈에서도 와인을 만든다는 사실에 다소 생소해하며 포트 와인을 맛보았고, 이내 포트 와인의 맛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날 마셨던 포트 와인은 샌드맨 와이너리의 10년 산 토니 포트 tawny port 였는데, 달착지근함이 최고조에 이른 끈적한 와인 느낌과 더불어 묵직하고 알싸한 위스키의 풍미가 대단히 인상 깊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포트 와인은 대표적인 주정 강화 와인으로, 혀에서 단맛이 깊게 느껴지는 반면에 알코올 도수는 19-22% 정도로 매우! 높은 독주 중에 하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날 나의 썸남은 독한 술이 만들어주는 아찔한 분위기를 상상하며 포트 와인을 챙겼을지도 모른다. 그 상상의 사실 여부는 아직 모르지만, 어쨌든 달달한 포트 와인과 함께 무르익은 그날 이후,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랑이 시작되고 난 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버금가는 일생일대의 고민으로,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포트 와인의 매력에 빠져서 썸남과의 사랑이 시작된 걸까?', 아니면 '썸남의 매력에 빠져서 포트 와인을 사랑하게 된 걸까?'. 이 논제에 대한 정답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그날, 포트 와인과 포트 와인남 '모두'에 대한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신기하게도, 포트 와인은 막 시작하는 사랑과 많이 닮았다. 포트 와인은 극강의 단맛을 보여줌과 동시에 언제든지 '독주'로 변신할 준비가 되어있다. 시작하는 연인들은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며 달달한 연애를 즐기지만,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관계로 자칫하면 살벌한 싸움을 경험하기도 쉽다. 이처럼 나는 포트 와인과 함께 달달하면서도 때로는 독한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고, 아직도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달콤, 살벌한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주 자연스럽고 예상 가능한 행보로, 우리 커플은 다음 해 여름에 포르투를 찾았다. 포르투에서 만난 샌드맨 와이너리와 샌드맨 포트 와인 컬렉션은 우리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고, 여행의 목적은 곧바로 '최대한 많은 포트 와인 경험해보기'가 되었다.
포트 와인의 고장인 포르투의 여러 와이너리에서 직접 포트 와인을 맛보며 알게 된 것은, 그 지역 주민들은 포트 와인을 식사 전이나 후에 마시는 것을 즐기며, 메인 메뉴와 함께 곁들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포트 와인은 일반적으로 디저트 와인의 한 종류로 구분되고, 디저트류 음식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처음 맛보았던 샌드맨 10년 산과 같은 꽤나 오래 숙성된 포트 와인은, 단맛과 함께 짙은 포도향과 오크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대표적인 K-안주인 삼겹살, 양대창 등과도 기막힌 마리아주를 보여준다 (숙성 기간이 짧은 루비 포트 ruby port 와인의 경우에는 웬만하면 디저트와 함께 즐기기를 추천한다!). 때문에 우리는 포르투에서도 메인 메뉴와 함께 포트 와인을 주문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레스토랑 서버분들이 '으잉?? 진짜 지금 포트 와인 마실 거야??' 하는 표정으로 질문을 했었던 것이 아직도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하늘길도 조금씩 열리고 있고, 해외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슬금슬금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어딘가 새롭고, 특별한 술이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포르투갈 행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포르투의 다양한 포트 와인들의 맛을 음미하며, 나의 삶 또는 우리네 사랑의 맛과 어떻게 닮아있는지 꼭 느껴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