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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술책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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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술 Nov 16. 2021

막걸리, 마실 때 꼭 지켜야 할 수칙 3가지

막걸리를 마실 때 꼭 지켜야 하는 수칙이 있다.


이 수칙은 수십 년간 다양한 경험 속에서 수많은 막걸리를 마셔본 한국의 막걸리 전문가,


나의 엄마가 만든 수칙이다.


몇 년 전 한 여름에, 가족끼리 근교에 골프를 치러 나간 적이 있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지만, 그린피가 조금이라도 저렴한 시간대에 라운딩을 하기 위해서 우리 가족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덜 떠진 눈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골프 카트에 올라탔다.


라운딩이 시작되자, 우리 가족은 비싼 그린피를 허비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샷을 날리고, 없어진 공을 찾아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찜통더위 속에서 아침 끼니도 때우지 못한 채 장장 4시간 30분 동안 골프를 치고 나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고, 시원한 물 생각이 간절했다.


라운딩이 끝나고 점심을 먹기 위해서 찾은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물컵에 시원한 물을 헐레벌떡 따르고, 드디어 그것을 마시려고 설레는 마음으로 손을 뻗는데, 엄마가 간절한 내 손을 막으며 말했다.


"물 먹지 마! 지금 물 마시면 막걸리 맛없어!"


첫 번째 수칙, 막걸리 마시기 직전에 물 마시지 않기.


저 말을 듣고 엄마의 진정한 사랑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지금 딸이 새벽부터 일어나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더위 속에서 골프를 치고 시원한 물 한잔이 아주 절실하다 하더라도, 극한의 고통 속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막걸리가 인생 최고의 맛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엄마 마음.


그것이 바로 엄마의 진정한 사랑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목이 말라서 죽어가는 사람이 막걸리 나오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 채 어리석게 물을 마시려 할 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라 말하고 싶다.


아무튼, 결국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채 막걸리를 기다렸고, 우리 가족은 함께 땀 흘리고, 막걸리를 기다린 상으로 인생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땀 흘리고 나서 메인 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마셨던 막걸리 한상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 수칙도 알 수 있다.


두 번째 수칙, 막걸리 마시기 전에 땀 흘리기.


막걸리를 먹기까지 우리 가족은 인당 최소 막걸리 한 병만큼의 땀을 흘렸을 거다. 그러니 그만큼의 수분을 막걸리 한 병으로 다시 보충하는 것은 인지상정. 내 몸속의 수분 750mL을 막걸리 750mL과 맞교환한다고 생각하면 다소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막걸리를 들이켤 준비가 되어있을 때 내 혀와 뇌에서도 막걸리를 최고로 맛있다! 고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이 당연한 현실임을 받아들이고, 자주는 말고 가끔씩 '물 : 막걸리 등가 교환법'을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골프, 등산 등 열심히 땀 흘리고 나서 먹는 막걸리와 동동주. 왼쪽 사진은 순대와 함께, 오른쪽 사진은 해산물 칼국수&김치전과 함께.


그리고 마지막 수칙은 사실 친한 동생으로부터 배운 것인데,


세 번째 수칙, 안주 선정에 고정관념 깨버리기.


친한 동생과 함께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갔는데, 동생이 카프레제(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를 곁들여 먹는 음식)를 카트에 담으며 "집에 가서 카프레제랑 막걸리 마셔야지!"하고 말하는 모습에 꽤나 충격을 받았었다.


지금껏 살면서 막걸리의 짝꿍은 김치전, 감자전, 수육, 족발 등등 인 줄로만 알았는데, 카프레제라니! 놀란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차렐라 치즈와 막걸리는 둘 다 '발효'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꽤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대표적인 막걸리 안주 '홍어 삼합' 또한 발효 음식이다. 홍어 삼합과 막걸리를 일컫는 '홍탁'이라는 단어가 그 맛이 얼마나 감동적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발효'라는 공통점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해보면, 서양의 대표적인 발효 음식인 카프레제도 막걸리와의 신선한 궁합을 자랑하며 '카프레탁'이라는 신조어를 창조해  낼 지도 모를 일이다.

왼쪽 사진은 그 날 동생이 보내준 카프레제와 함께한 막걸리 (카프레탁). 오른쪽 사진은 소위 '홍탁'이라 일컫는 홍어 삼합과 막걸리.

어떤 술과 잘 어울리는 안주를 찾을 때, 그 술의 원산지 또는 색깔과 같은 기본적인 속성을 바탕으로 공통된 속성을 가지는 안주를 고르면 매칭에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 예를 들어, 스파이시하면서도 묵직한 바디를 보여주는 개성 있는 '템프라니요' 품종의 스페인 와인은 이베리코 하몽이나 감바스 알 아히요와 같은 스페인 전통 음식과 매우 잘 어울린다.


나 또한 기본적인 속성에 초점을 맞춰서 환상의 짝꿍을 찾아냈던 적이 있는데, 바로 크로플과 꼬냑이다. 가로수길에 갔다가 유명한 맛집에서 크로플을 사 왔는데, 짙은 갈색의 반짝이는 외모를 자랑하는 크로플을 보며 왠지 꼬냑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짙은 갈색'이라는 공통점을 이용한 아주 단순하고 모험적인 매칭이었지만, 크로플의 고소하면서도 깊은 단맛이 꼬냑이 숨기고 있는 내면의 캐러멜향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기막힌 마리아주를 선사했다.

'짙은 갈색'의 공통점을 가진 크로플&꼬냑.

물론 다른 배경 없이 오직 술과 음식의 공통된 속성으로만 조합한다면 실패할 때도 있을 테지만, 가끔은 '카프레탁'처럼 술꾼의 센스에 의존하여 가장 단순하면서도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보는 것이 막걸리를 마실 때 지켜야 할 마지막 수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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