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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ul 20. 2024

더 넓은 세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갈 수 있는 곳도, 먹을 수 있는 것도 많아졌습니다

 어렸을 적, 저의 세상은 작고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동생과 함께 용산에 있는 CGV에 가기로 한 날, 잔뜩 긴장했지만 이게 맞나 아닌가 고민하다가 둘이 함께 남대문에 간 기억이 있었습니다. 잔뜩 긴장하는 바람에, 원래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게 잡은 탓에 무사히 영화를 볼 수는 있었지만 어찌나 식은땀이 나던지.... 그 후로는 그 정도로 멀리 가지는 않았지만, 긴장하지 않고 영화관이 있는 역에 내리기까지는 몇 번의 시행착오가 더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멀지 않은 옆 동네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가봤던 동네들이 연결되지도 않았고, 길에 익숙하지도 않았습니다. 서울이 아니라 제 동네도 너무나도 컸죠. 엄마 손을 잡고 어디를 가는 길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지고, 복잡한 곳에서 움직이는 엄마가 마냥 신기하기만 한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어렸을 때는 식은땀을 꽤나 흘렸던 곳들도 편안하게 다니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참 멀다고 생각했던 길들도 이제는 가깝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동안 만들었던 시행착오와 다양한 경험들이 제가 사는 세상을 넓혀주었고, 편안하게 만들어준 것이지요.


 한국에서의 길 말고도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지는 않지만, 과거에 생각만 해보던 나라들에 방문하면서 과한 긴장도 덜해지고 두려움도 덜해지고 좀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의 첫 해외여행은 중국이었는데 친구와 가기 며칠 전부터 엄청 고민하고, 긴장하고 기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라서 잔뜩 긴장하기도 하고 겁을 먹기도 했었습니다. 호주로 가는 길에 태국에서 또 어찌나 당황하고 긴장을 했는지...... 호주에 도착해서는 울컥하고 눈물이 냐온적들도 많았습니다. 호주의 버스는 안내 방송이 없는 터라, 제 눈에는 비슷비슷해 보이는 풍경에 몇 번이나 잘못 내리고 길을 잃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는 도착 전까지 평안하게 앉아 풍경도 구경할 수 있었지만 그전까지는 핸드폰을 꼭 쥐고서 잔뜩 긴장해서 이동하곤 했죠. 현재의 저는 침착하게 구글맵을 켜고, 조금 잘못 와도 돌아서라도 가고, 공항에서는 더더욱 침착합니다. 


 좀 더 침착하고 여유로워진 저는 이제 새로운 환경에 대해 너무 큰 기대도, 긴장도 하지 않고 좀 더 잘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좀 더 먼 장소들까지 아무렇지 않게 가기도 하고, 새로운 장소도 곧장 도전하면서 즐깁니다. 제가 활동하고 인지하고, 편안해하는 장소가 넓어진다는 것은 곳, 또 저의 세상이 조금쯤 성장했다는 뜻이 아닐까요?


 또, 당기는 음식도 더 다양해졌습니다. '오늘은 벨기에 와플이 먹고 싶어.', '오늘은 후토마키가 먹고 싶어', '오늘은 피쉬볼이 먹고 싶다.', '오늘은 국물이 진한 쌀국수를 먹고 싶어.', '폴란드에서 먹었던 삐에로기가 먹고 싶다'처럼 먹고 싶은 음식도 구체적이고 다양한 음식들이 먹고 싶어 집니다.


 어렸을 적, 저희 집은 외식을 자주 하는 집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저희 어머니는 동네에서도 요리를 잘하기로 소문이 나셨기 때문에 아주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지만 그렇다고 어머니가 라비올리나 동파육 같은 음식을 드셔보시지도 않으셨는데 만들어주실 수는 없으시니까요.


 갈 수 있는 장소가 늘어나면서, 그리고 만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먹어 본 음식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당기고 생각나는 음식도 다양해졌습니다. 다양한 음식을 떠올리고 먹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함을 느끼고, 제가 조금 더 어른이 되고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나아가 과거에는 싫어했지만 지금은 맛있게 먹는 음식들도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예전에는 땅콩을 제외한 모든 견과류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다닐 때, 반 친구가 아침에 매일 나눠주는 견과류를 거절하지 못해서 먹다 보니 지금은 곧 잘 먹습니다. 재미있게도, 그러면서 유일하게 안 먹는 견과류가 땅콩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항상 '시간이 지나면서 입맛은 계속 바뀐다'라고 하셨는데 내가 좋아하는 맛이 달라질 때, 예전에는 싫었던 음식이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를 때처럼 입맛이 바뀌는 순간. 내가 먹지 못했던 것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되는 순간. 그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와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저는 또 제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좀 더 제 세계가 커지고 있음을 느끼고 기분 좋은 만족감을 받기도 합니다.


 더 많은 장소와 음식들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이것 역시 한껏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는 작은 성장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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