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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튤립 Jan 22. 2021

코코컵과 엄마

핫 초콜릿: 그 달콤함과 따뜻함에 대하여



눈이 오는 날에만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있다. 다른 날은 절대 안 되고 꼭 눈이 내리는 날이어야만 한다. 그것이 여섯 살의 내가 고사리만 한 손을 걸어 쥐며 엄마와 한 약속이었다. 세상이 하얗게 변한 날이면 엄마는 찬장을 열었다. 그리고 짙은 갈색의 네모 반듯한 통과 파란색에 눈 내린 산이 그려진 둥근 통을 꺼냈다. 나는 조리대에 겨우 닿는 키였지만 온몸으로 신남을 표현하는 중이었다. 유리장의 가장 낮은 왼쪽 모서리엔 손잡이가 달린 까맣고 매끈한 컵이 있었다. 다른 컵들보다 훨씬 작아서 다른 때는 그 컵이 거기에 있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눈이 오는 날에 꺼내는 그런 컵이었다. 그렇게 생긴 컵을 ‘머그’라고 부르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나중의 일이고 ‘에스프레소’ 잔이라서 그렇게 작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더더 나중의 일이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조그만 나를 위해 꼭 맞는 사이즈의 컵을 따로 만든 것인 줄 알았다. 나는 그 컵을 ‘코코컵’이라고 불렀다.


엄마는 제일 작은 냄비를 꺼내 불을 올리고 우유를 큰 컵으로 따랐다. "눌어붙지 않게 조심해야 해. 그리고 아주 작은 불로 끓여야 한단다." 그리고 갈색 통에서 한 스푼, 파란 통에서 두 스푼, 가루를 털어 넣고 젓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초콜릿 좀 가져다줄래?"

서둘러 달려가 의자를 놓고 장식장을 열었다. 금테가 둘러진 네모반듯한 간식 상자를 열면 바스락거리는 포장지에 싸인 초콜릿과 과자, 사탕 등이 눈을 즐겁게 했다. 매일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몸이 약했던 나는 먹어도 좋다는 말이 떨어질 때마다 상자로 달려가곤 했다. 고심하다가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초콜릿을 세 개 챙겼다. 껍질을 까서 냄비에 퐁당퐁당 집어넣고 의자를 식탁에 가져다 두면 내 할 일은 끝난다. 그리고 달콤한 냄새를 맡으며 완성되기를 기다린다.


나의 작은 코코컵에 가득 담으면 엄마의 컵은 반절 정도 차는 양이었지만 항상 더도 덜도 말고 그만큼만 만드셨다. 흘릴까 봐 조심조심 컵을 들고 창가로 향했다.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는 산을 바라보며 저 산이 코코아 통에 있는 산이냐고 물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읽을 수 없는 글씨로 가득한 책을 읽으셨고,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과나무 그림책을 읽으며 홀짝거렸다. 새하얀 세상과, 알록달록한 책과, 달콤한 핫 초콜릿. 그 고요함을 나눠마실 수 있는 시간 때문에, 나는 언제나 눈이 오면 설렜다.



핫 초콜릿(Hot Chocolate)은 초콜릿이나 코코아 가루를 넣은 음료이다. 최초의 초콜릿 음료는 기원전 500년경의 멕시코에서 카카오 열매와 각종 향신료를 물과 섞어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리가 지금 마시는 핫 초콜릿과는 굉장히 다르다. 그리고 16세기 초에 코르테즈가 카카오 열매를 유럽으로 가져가면서부터 지금의 모습과 비슷해지기 시작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핫 초콜릿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레시피는 백 년이 넘어서야 다른 유럽 국가로 퍼지기 시작했다. 17세기엔 네덜란드 사람들이 북미로 핫 초콜릿을 전했고, 18세기 영국에서는 커피 하우스처럼 초콜릿 하우스가 생길 정도로 유행했다. 18세기 후반에 한스 슬로안이 자메이칸 레시피인 초콜릿에 우유를 섞는 방법을 가져와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고(혹자는 영국인들이 우유를 처음으로 섞어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로 저녁식사 후의 음료로 즐겼다.


핫 초콜릿은 다양한 조리법이 있다. 가장 쉬운 것은 스위스미스나 미떼처럼 인스턴트 제품을 이용할 수도 있고(그렇게 하면 1분 만에 끝난다. 가루 넣고 우유 또는 물을 넣고 전자레인지 1분) 엄마의 레시피처럼 쇼콜라 쇼와 인스턴트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레시피도 괜찮다. 하지만 오늘은 프랑스 정통 초콜릿 음료 스타일인 쇼콜라 쇼(Chocolate Chaud)를 소개하려고 한다. 재료는 우유, 초콜릿, 설탕으로 간단하다.


<재료>

- 우유 200ml (저지방이나 무지방은 안된다)

- 다크 초콜릿 70g (품질 좋은 제품으로 잘게 썰어서 준비한다)

- 황설탕이나 흑설탕 2큰술(단 것을 좋아한다면 더 넣어도 좋다)

*추가 토핑으로 생크림이나 코코아 가루를 뿌려도 좋다(마시멜로우는 미국 스타일이니 오늘은 패스!)


<만드는 법>

- 우유를 중불에 끓이고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인 뒤 초콜릿을 넣고 잘 저어 녹인다.

- 초콜릿이 다 녹으면 3-4분간 더 저어주며 원하는 농도가 될 때까지 조절한다.

- 불을 끄고 설탕을 넣은 뒤 녹을 때까지 저어준다.

- 컵에 담아서 바로 내거나 추가로 위에 생크림 토핑이나 코코아 가루, 시나몬가루를 뿌려 낸다.


조금 귀찮을 수도 있지만 걸쭉하게 끓여낸 쇼콜라 쇼는 맛을 보고 나면 15분의 노력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된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맛보는 찰나의 달콤함, 기왕이면 눈이 오는 날에 시도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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