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튤립 Mar 30. 2021

단팥빵은 할배 취향이 아니야!

단팥빵: 클래식한 단맛의 정석에 대하여


"뭐야? 너 팥빵 먹어? 할아버지인 줄."


 중학교 1학년. 친구의 깔깔거리는 놀림에 나는 조심스럽게 들었던 단팥빵을 다시 내려놓았다. 아직 제대로 자아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척이나 신경 썼다. 친구가 예쁘다고 하면 사고, 별로라고 하면 말고, 혼자서 어딜 가기보단 우르르 몰려다닐 때 마음이 편한 그런 소심한 아이.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매장에 있던 빵들 중에서 내 눈에 제일 세련되어 보이는 올리브 치아바타를 집어 들었다(이탈리아어를 몰랐던 나를 원망한다. '슬리퍼'라는 뜻을 가진 식사빵이란 걸 알았다면 안 골랐을 텐데). 집에 가는 길, 퍽퍽하고 아무 맛도 안 나는 빵을 씹으며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한동안은 단팥빵을 먹을 수 없었다. 이게 그렇게 촌스러워 보이나? 맛있는데. 우유랑 먹으면 진짜 맛있는데 살까? 아냐, 그냥 다른 거 먹자. 제과점에 가서도 고민만 하고 다른 빵들만 잔뜩 사 오기 일쑤였다. 빵 하나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고르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체육대회 간식으로 빵과 우유가 나왔다. 단팥빵, 소보루빵, 슈크림빵 중에 고를 수 있었는데 머뭇거리던 나는 반장이 건넨 단팥빵을 받았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단팥빵은 여전히 가운데는 폭 파인채로, 매끈한 표면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내게 물었다.


"나 슈크림빵인데 바꿀래?"

"어? 너 단팥빵 좋아해?"

"당연하지! 완전 맛있지 않냐? 난 호빵맨* 있었으면 다 뜯어먹었다."

*호빵맨은 지친 사람들에게 단팥 빵인 자신의 머리통을 뜯어 나눠주는 만화 캐릭터이다


단팥빵을 좋아하는걸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니. 쟤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나? 나는 여태 나를 괴롭혀왔던 그 문장을, 내가 듣고 상처 받았던 그 질문을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약간 좀 그.. 옛날 스타일 아냐?"

"야, 전통적이라서 더 맛있는 거거든? 넌 안 좋아하냐?"


그 친구는 오히려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렇지. 전통적으로 맛있지. 남녀노소 두루두루 다 좋아하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은 빵인데, 대체 나는 뭘 신경 쓰면서 안 먹은 걸까. 내 질문이 너무나도 멍청하게 느껴져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오랫동안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문장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아니, 나도 좋아해. 단팥빵. 맛있어. 우유랑 먹으면 더 맛있어. 그.. 완두 앙금빵도 맛있고, 우리 학교 앞에 있는 제과점에는 단팥이랑 밤도 같이 넣은 빵도 팔아. 그거도 엄청 맛있대."

"그치! 맛있지! 아 그럼 너 먹어, 얘들아!!! 나 슈크림빵인데 단팥빵이랑 바꿔줄 사람!!!!"


단팥빵을 찾아 아이들 사이로 사라진 친구를 뒤로하고, 나는 부스럭거리며 빵 봉지를 뜯었다. 한 입 크게 베어 물자 입 안 가득 익숙한 달콤함이 퍼진다. 뙤약볕에 친구들의 피구경기를 지켜보면서, 한입한입 음미하며 빵을 꼭꼭 씹어 삼켰다. 꼭 호빵맨의 측두엽을 뺏어먹은 것처럼, 몸도 마음에도 힘이 났다. 


사람마다 그저 취향이 다를 뿐이라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은 나쁜 것도 아니고 놀림받아야 할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나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오늘 단팥빵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소보루 빵, 슈크림 빵과 함께 3대 클래식 간식 빵에 속하는 단팥빵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단팥빵의 유래를 찾아보면 일본에서 시작하는데, 19세기 중반 메이지유신을 전후로 하여 유럽에서 들어온 빵은 유럽 문화를 동경하던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 1869년 유럽에서 제빵기술을 배운 기무라 야스베가 일본 최초의 서양식 빵집을 개업했다. 서양 빵을 일본 사람들이 친근하게 먹을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그는 전통적인 화과자 재료였던 팥 앙금을 빵 반죽으로 싸서 구워내는 앙금 빵을 만들게 된다. 딱딱한 식사 빵에 팥을 넣어서 만들다가 실패하는 등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끈질긴 연구 결과 1874년에 지금의 단팥빵을 출시할 수 있었다. 


 그 이후 한국에도 들어오게 된 단팥빵은 팥 앙금 대신 완두콩배기를 사용한 앙금 빵, 고구마 앙금 빵 같이 다양한 앙금 재료를 사용하며 발전했고, 팥 앙금과 함께 생크림을 넣은 생크림 단팥빵이나 소보루빵 안에 앙금을 넣고 튀긴 제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단팥빵(8개 분량)


<재료>   

- 강력분 230g

- 박력분 30g

- 설탕 50g(흰 설탕이 좋다)

- 소금 1작은술

- 드라이 이스트 3g

- 달걀 1개(반죽용) + 달걀 1개(달걀물 브러싱용) 

- 우유 50ml

- 물 50ml

- 깍둑썰기한 버터 35g

- 팥 앙금 280g(만드는 방법은 붕어빵 게시물을 참고하면 된다)



<만드는 법>   

강력분과 박력분, 설탕과 소금을 체로 쳐서 준비한다.

달걀을 잘 풀어서 가루와 섞는다.

우유와 물을 35℃-40℃로 데운 뒤 드라이 이스트를 넣고 잠시 기다린다. 거품이 올라오면 가루류에 섞어서 반죽한다.

처음에는 반죽이 끈끈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매끈한 공모양이 될 때까지 계속 치대며 5분 이상 반죽한다.   

깨끗한 그릇에 반죽을 옮기고 계속 치대며 버터조각을 조금씩 더해 반죽이 부드럽고 매끄럽게 될 때까지 10분 이상 펀칭한다.

반죽을 얇게 늘렸을 때 구멍이 생기지 않고 반투명하게 글루텐이 잘 형성된 것이다.

둥근 공 모양으로 만들어 40℃정도에서 1시간정도 1차 발효를 시킨다.

반죽이 2배 부풀면 가스를 빼고 반죽을 8조각으로 자른다.

다시 8개의 공 모양으로 만들고 실온에서 15분정도 휴지한다.

휴지한 반죽은 손바닥으로 눌러 펼치고 앙금을 35g 넣은 후 꼼꼼하게 밀봉한다.

반죽이 마르지 않도록 비닐 랩으로 덮어 40℃에서 30분 동안 2차 발효를 진행한다.

오븐은 190℃로 예열한다.

작은 그릇에 달걀 1개와 물 2큰술을 넣고 잘 섞어서 달걀물을 만들어준다.

반죽이 부풀면 가운데 부분이 옴폭 파일 수 있도록 손가락으로 눌러주고 깨를 뿌린다.

브러쉬로 달걀물을 꼼꼼하게 바른 뒤 오븐에서 13-15분 정도 윗면의 색깔이 예쁘게 나올 때까지 굽는다.


만약 박력분이 없다면 중력분에 옥수수 전분을 약간 섞어서 대체해도 되고 그마저도 없다면 그냥 강력분으로 만들어도 괜찮다. 1차 발효와 2차 발효는 충분히 해주는 것이 좋으니 총 조리시간은 3시간 이상으로 잡고 여유로운 날에 시도하길 바란다.

이전 07화 초승달이 먹고 싶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