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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튤립 Jan 26. 2021

오후 4시에는 크림 티

스콘과 딸기잼, 그리고 클로티드 크림: 영국의 차문화에 대하여


 처음 국제선 비행기를 탄 것은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였다. 무슨 용기였는지 부모님에게 무작정 영국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우겼던 것이다. 해리포터와 함께 자라다시피 한 나는 왠지 그곳에만 가면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고, 우아한 영국식 악센트를 가지게 될 것만 같았다.


 런던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 같은 수업을 듣는 일본인 T언니가 주말에 근교 여행을 가자고 했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나는 따뜻한 호의에 신나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기한 것은 먼 타국에 있으면 외면적으로든 내면적으로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 수업을 듣는 유일한 동양인인 나와 T언니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온통 백인과 아랍인뿐인 공간에서 그나마 비슷하게 생긴 두 존재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워털루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가보니 T언니의 옆에 서글서글한 눈매의 키 큰 여자 한 명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T는 내가 어색해할까 봐 한국인 친구 J를 함께 데리고 와준 것이었다. J언니는 런던에 온 지 벌써 육 개월이 지났다고 했다. 우린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사서 기차에 올랐다. 오늘의 목적지는 윈저성이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하는 윈저성은 템즈강변에 위치해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주말별장인 이 곳은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일반 시민들이 피크닉이나 산책을 위해 많이 찾는다. 맞은편에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립학교인 이튼 스쿨이 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신난 나는 백조들과 샌드위치를 나눠먹고 발바닥이 아파올 때까지 성 안을 걸어 다녔다. 구석의 벤치에 앉아 발목을 까딱거리던 내게 J언니가 물었다.


"크림 티 먹을래?"


 크림 티? 그게 뭐지? 차에 크림을 넣은 건가? 뭔지도 모르고 일단 좋다고 따라나섰다. 바깥으로 나와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메뉴판을 읽어보니 크림 티는 홍차+스콘+클로티드 크림+딸기잼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차 세트란다. 샌드위치나 케이크 같이 다양한 다과가 곁들여지는 애프터눈 티 세트보다 저렴하고 간단하게 먹기 좋은 구성이다.


 따끈한 홍차에 설탕을 두 스푼 넣고, 우유를 좀 따르면 영국식 밀크티이다. 우유에 홍차를 넣고 끓이는 로열 밀크티나 펄을 넣는 태국식 밀크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굉장히 밍밍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일단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시고 나면 스콘을 맛볼 차례이다. 버터나이프로 스콘을 반으로 가른 뒤 클로티드 크림을 한 겹 바른다. 이름도 생소한 이 크림은 저온살균처리를 하지 않은 우유를 가열해서 만드는데 레몬색에 가까운 진한 아이보리색과 뻑뻑한 질감이 특징이다. 처음 먹어보면 별맛 안 나서 '이게 뭐지?'싶지만 자꾸 먹다 보면 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딸기잼을 얹어주면 오후 4시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크림 티 완성이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카페에서 먹었던 크림 티 이후로, 수백 번의 크림 티 세트를 먹어봤지만 아직도 그 날을 떠올리면 버터나이프로 클로티드 크림을 뒤적거리며 깔깔대던 호기심 많은 스무 살의 내가 떠오른다. 그 날 이후로 용기를 얻은 나는 런던 근교부터 영국 북쪽에 있는 에든버러, 남쪽의 뉴키까지 꽤나 여러 곳으로 모험을 떠날 수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느끼는 것도 많던 그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홍차를 끓인다.




영국의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문화는 워낙 유명해서 굉장히 오래되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최신의(?) 유행이다. 홍차는 찰스 2세가 즐겨 마시기 시작하면서 17세기 중반부터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고 200년이 지난 19세기 중반에 와서야 '애프터눈 티'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베드포드의 공작부인 안나가 1840년에 처음으로 고안했는데 저녁 식사 시간이 오후 8시였던 그녀는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서 오후 4시에 빵과 버터, 케이크, 그리고 차를 가져오게 했다. 바로 이것이 애프터눈 티의 시초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시간에 친분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애프터눈 티 문화는 점점 상류층의 문화로 정착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계층 상관없이 오후 4시-5시쯤에 즐기는 차 문화를 통칭한다. 정통 애프터눈 티 세트에는 홍차와 각종 샌드위치(오이 샌드위치는 필수다), 케이크, 페이스트리, 스콘, 클로티드 크림과 과일잼이 나온다. 전부 핑거 사이즈로 작게 서빙된다. 그렇게 거창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오늘은 간단한 크림 티 세트를 만들어보도록 하자.


제일 쉬운 것은 가까운 제과점에서 스콘을 사고 딸기잼과 클로티드 크림을 곁들이는 것이다. 스콘은 인당 2개가 국룰이다. 밀크티는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타도 좋고 밀크티 파우더를 이용해도 좋다. 아래는 직접 크림 티 세트를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다. 하지만 클로티드 크림은 만드는데 3일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면 사는 것을 추천한다.


클래식 스콘 (2인 분량)


<재료>

- 박력분 180g

- 베이킹파우더 0.5 티스푼

- 버터 45g (깍둑썰기 해서 준비)

- 레몬주스 혹은 레몬즙 약간

- 설탕 1.5 테이블스푼 / 소금 약간

- 우유 90ml

- 바닐라 익스트랙트 0.5 티스푼

* 반짝거리고 매끈한 표면을 만들고 싶으면 계란물을 바르면 된다.


<만드는 법>

- 오븐을 220℃로 예열하고 밀가루를 체 쳐서 소금과 베이킹파우더를 섞어준다.

- 밀가루에 버터를 섞어 손으로 문질러주는데 소보루처럼 몽글몽글한 덩어리화 되면 설탕을 섞어준다.

   (버터가 잘게 쪼개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우유를 살짝 데워 바닐라 익스트랙트를 섞고 레몬즙을 뿌린 뒤 잠시 둔다. (버터밀크처럼 된다)

- 가루를 파서 분화구처럼 만들어주고 가운데에 아까의 우유를 붓고 나이프나 포크로 재빨리 섞어준다.

  (반죽을 치댄다기보다는 자른다는 느낌으로 섞어줘야 나중에 결이 잘 나온다)

- 베이킹 팬에 밀가루를 뿌리고 손에 밀가루를 묻힌 뒤 반죽을 4cm 두께로 밀어준다.

   (혹시 버터가 막 녹은 것처럼 느껴지면 꼭 냉장고에 1시간 이상 반죽을 휴지 한다)

- 작은 그릇이나 뚜껑으로 반죽을 찍어내고 표면에 계란물을 발라준다.

- 10분-15분 정도 구워 윗면이 짙은 황금색을 띠면 꺼낸다.


클로티드 크림 (한 컵 정도 나옴)


<재료>

- 생크림 2컵


<만드는 법>

- 오븐을 80℃로 예열한다.

- 오븐 조리 가능한 넓은 그릇에 생크림을 펴 넣고 12시간 동안 굽는다.

- 노랗게 변한 크림을 식힌 뒤에 냉장고에 넣고 하루 이상 굳힌다.

- 다음 날 윗부분의 크림만 걷어내서 병에 담고 액체는 버린다.

- 크림은 꼭 냉장 보관하고 완성된 날로부터 5일 이내에 전부 먹는다.



스콘은 구운 당일에 먹는 것이 제일 맛있지만 냉동했다가 데워먹어도 되니 남은 스콘은 잘 밀봉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길 바란다. 그리고 대망의 클로티드 크림을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이 있다면, 꼭 책방지기에게 자랑해주길 바란다. 금방 만든 클로티드 크림이라니, 실컷 부러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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